문화



사랑, 그 지고지순함이여…홍상화 '범섬 앞바다'

'범섬 앞바다'는 제목부터 적막하고 깊다. 작가 홍상화(76)가 겪어온 시대의 파고와 질곡이 느껴지는 듯하다.

쉽고 빠른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한 현대에 다소 낯설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소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편에 똬리를 틀고 있다.

홍씨는 '이정훈'과 '이혜진'을 통해 그 순수한 사랑의 이면을 톺아본다. 이정훈은 일간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러나 더 이상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자조감에 빠진다. 그러다 이혜진을 만난다. 운명이라고 여긴다.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다. 이정훈은 우연히 그녀의 일기장을 몰래 본다. 그녀가 연인 '김혁수'에게 배신감을 맛본 나머지 자살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로해주다가 격정적이고 꿈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혜진이 가진 비극성으로 인해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그녀가 자신과의 지순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김혁수에게로 떠난 것이다.

 '범섬 앞바다'는 사랑의 장벽을 그린다. 여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남자의 사랑은 현실적 벽에 거듭 부딪힌다. 그리고 사랑뿐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

고전적인 사랑 방식을 다루나 홍씨는 속도감이 깃든 문체와 진심이 어린 언어로 이를 탈피한다. 마지막, 이정훈은 이혜진을 영원히 살아 숨쉬게 하고자 서귀포 범섬 앞바다 바닷속 암벽에 그녀의 전신상을 새긴다. 진부한 사랑이야기라는 인식이 차지할 자리를 여운으로 채운다. 지순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현대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정훈은 대중의 인기만 좇는 엉터리 대중소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소재 고갈로 치달은 자신의 처지에 고뇌한다. 이정훈의 사랑과 소설에 대한 순정은 홍씨의 것이기도 하다. 출판사 한국문학사의 '작은 책'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240쪽, 7000원

 한편,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나온 홍씨는 1989년 장편 '피와 불'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거품시대'(전 3권) '디스토피아', 연작소설집 '우리 집 여인들' 등을 펴냈다. 2005년 소설 '동백꽃'으로 제12회 이수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문학' 주간과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