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윤택·중견연극인, 대학로는 살아있다 '바냐아저씨'

대학로를 지켜온 중견 연극인들과 극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64) 예술감독이 만났다. 40~70대 배우들로 구성된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이 이 예술감독에게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겼다.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은 2014년 극단 전설과 합작공연 '현자나탄' 이후 네트워크 활성화에 힘썼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사업 중 중견예술인들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견 원로 출연료 지급 지원 사업에 선정됐고, 이후 공연예술센터의 심사를 거쳐 '바냐아저씨'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바냐아저씨'는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인 체홉이 189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갈매기', '세 자매', '벚꽃동산' 등과 함께 그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죽은 누이동생의 딸 '소냐'와 함께 교수인 매부 '세레브랴코프'의 시골 토지를 지키며 사는 '바냐'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퇴직한 매부가 젊고 아름다운 후처 '엘레나'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오고, 바냐는 '엘레나'에게 사모의 정을 품게 된다. 이번 중견연극인 창작집단 버전은 이 연출의 장기인 블랙코미디가 도드라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연출은 7일 오후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체홉의 전원 버전"이라며 웃었다. "'바냐아저씨'는 체홉 작품 중 가장 민중적이고 유일한 희극이다. 다른 작품의 결말이 자살하거나 (터전을) 떠나거나 하는데 이 작품은 바냐의 승리로 끝난다. 바냐가 땅을 지키는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민중의 승리를 다룬 작품이라 전원 버전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작품 외적으로는 "어른들이 해온 것을 지키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해랑의 백서에도 있다. 내면 연기라는 건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마라, 웃지 마라, 우지 마라라는 거다. 우리 연극의 지켜야 할 도리다. 전통 연극이 지켜야 할 도리라는 거다. 우리가 전통 연극을 하는 거다."

기주봉(61)이 바냐,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김지숙(60)이 엘레나, 배우 곽동철이 몽상가 아스토르프를 연기한다.

이 연출은 '왕년의 스타'들이 1, 2배 또는 1.3배로 느리게 연기하라고 주문 하는 중이다. "멋있는 척 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목적은 중년 배우들이 멋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김지숙이 40대로밖에 안 보인다. 그러니 그녀 목소리와 연기가 정말 젊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곽동철은 정말 멋있고, 기주봉은 친절한 아저씨로 그리고 싶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새삼 하체 운동을 하고 있다. 하체에 힘을 싣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대신 상체는 아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있다. 인물들의 개성이 아주 드러난다. 개성이 다들 강하면 난장판이 되니, 묶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신 하체(의 움직임)는 맡겨달라고 했다."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의 카메라처럼 클로즈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객의 시선을 잡고 풀 수 있는 거리를 배우 스스로가 해내야 한다. 배우가 천천히 연기하면 클로즈업이 된다. 영화배우, 탤런트와 다른 연극배우의 기본은 하체를 쓰는 워킹이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걸어야 한다. 하체 움직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지숙은 "이번 '바냐아저씨'의 매력은 이윤택 연출의 해석이 너무 재미가 있다는 것"이라며 "외국에서 '바냐아저씨'를 봤고 국내에서도 '바냐아저씨'를 다 찾아봤는데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자신감이 생긴다"며 흡족해했다.
특히 바냐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든다. "권태롭고 지루한 바냐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스꽝스럽지만 너무 사랑스럽게 그렸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와 에너지를 대본에서 찾고 있다. 엘레나의 본질도 그런 부분에서 찾고 있다."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이 가벼워진 대학로 연극 풍토에 그래도 기준이 됐으면 한다. "전설이 될 수 있는 단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40대, 50대, 60대, 70대에 대한 지원이 없다. 그럼에도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한편 이 연출가는 대학로에서 거장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학창작기금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 당시 연극계에 불던 '외압' 논란의 한 편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지난해 11월 말부터 위탁 운영한 부산 기장군의 어린이 극장 '안데르센 극장'이 개관 한 달여 만에 문을 닫으면서 또 다른 의혹이 싹트고 있다.

이 연출은 그러나 정치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나는 내가 수명이 다 됐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좌파가 아니고 진보적인 사람도 아니다. 단지 내 학교 동기(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문재인)라서 (지지 연설을) 했는데 후회는 없다."

다만 "요즘 들어 괴로운 것은 안팎으로 받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왜 많은 소극장이 있는데 이윤택하고만 하려고 하나라는 말이 있다. 이윤택이 쌓아온 분야라는 게 있다. 한국사회에서 특혜를 받고 있지. 이제는 특혜를 받으려는 입장이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 있겠다. 그래서 국공립(에서 연극을) 안 하고 민간 소극장하고. 이제 내가 세우는 극장에서 할 거다. 현재 세상에 대해 가타부타하거나 저항, 순응할 생각은 아니다. 올해 30주년인데 내 정리의 해로 삼고 올해 7월까지 있다가 처음 시작한 부산 가마골 소극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조용하게 연극을 할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차에 '바냐아저씨' 제안을 받았다.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사랑을 받은 사람이니까. 촌놈인데 배타적인 대접을 받지 않았다. 임영웅, 김동훈, 김의경, 연극계 세 포스들. 즉 산울림, 실험극장, 현대극장에서 다 연극을 했다. 이분들이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대접을 해줬다. 연극 선생들로부터 받은 혜택을 이제는 돌려줘야 한다. 대학로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번 작업에 상상 이상으로 힘을 쏟고 있다. 정말 대학로 연극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분들이 증명할 거다."

27일부터 2월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 시어터 2관. 고인배, 이재희, 이용녀 등. 3만~5만원. SCN엔터테인먼트. 02-765-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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