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예은 평양통일예술단장 "북한춤, 역동적이면서 현란하지요"

"우리가 안성의 꽃이다. 호호호."

경기 안성 보개면 종합운동장에 꽃이 활짝 폈다. 2013년 러브콜을 받아 경기 하남에서 안성으로 옮겨 새 둥지를 튼 평양통일예술단 때문이다. 안성시 상설공연, 안성시 바우덕이 축제 공연 등 정기적으로 무용 공연을 펼치며 한겨울에도 꽃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북한 이탈여성 10여명으로 구성됐다. 2014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북한 이탈주민의 안정적인 대한민국 정착을 돕고 있다.

안성 종합운동장의 평양통일예술단 사무실에서 만난 조예은(40) 단장은 "북한사람들도 화려한 춤을 춘다. 프로다운 무용수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며 의욕을 숨기지 못했다.

함경 무산에서 태어난 조 단장은 북에서 내로라하는 무용수들만 모인다는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했다. 평양시립예술단 단원으로 활약한 톱클래스다. 그들 중에서도 맨 앞줄에서 공연한 실력이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조 단장을 눈여겨 본 유치원 교사의 권유로 무용에 발을 들였고, 12세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여기에 쟁강춤 등 최승희(1911~1967)의 무용을 전공했다는 희귀성이 더해진다. 최승희의 제자의 제자로, 직계다.

"무용과에 10명이 입학하면 4, 5명만 졸업한다. 실력과 함께 인내심도 있어야 하거든. 어떤 '빽'도 실력이 없으면 안 되는 곳이지. 우리는 연습이라고 안 한다. 훈련이라고 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미모와 체격은 기본이고."

그럼에도 중국을 거쳐 1998년 한국으로 온 이유는 "하루라도 젊었을 때 더 큰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북한은 평양밖에 없다. 조금 더 넓은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싶었다. 사춘기에 매일 똑같은 연습에 지쳐 있기도 했지.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머니인 방분옥(61) 평양통일예술단 대표 등 가족이 함께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운이 매우 좋았다"고 거듭 감사해하는 조 단장은 "무용이 너무 힘들었던만큼 남한에서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커피 공부를 하고, 스포츠댄스를 하고, 레스토랑 일을 배우고, 칵테일과 샌드위치 만드는 법 등을 배웠다. 진짜 열심히 살아갔다."

그러다가 2007년 평양통일예술단을 결성한 어머니가 2010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이 단체에 조금씩 발을 들이게 됐다. 차츰 몸이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단장 일도 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몸을 만드는 데 1년6개월이 걸리더라.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가 행사에서 내가 춤을 추는 걸 보고는 2011년 12월24일 열린 경기도 행사에 초청을 해줬다. 이후 많은 분들이 알아봐서 폭넓게 활동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평양통일예술단을 자선단체로 오해한다. 하지만 여러 축제에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는 프로페셔널 팀이다. 1년 평균 약 130회 공연을 하는데, 일부 봉사활동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식 무용무대로 채운다. 현재까지 누적 공연수는 1500회 이상이다. 평양통일예술단과 단체명이 유사한 '짝퉁'이 40개 가까이 있을 정도로 조 단장의 팀은 자리를 잡았다.

올해 10년, 내년이 10주년인데 "이제는 알아봐주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 뿌듯하다"며 흡족해했다. "응원해주는 분들도 늘었다. 어떤 분들을 고향 생각이 난다며 울기도 하고. 무엇보다 공연이 끝나고 열렬한 박수를 받을 때 기쁘다. 박수 소리를 들으면 관객들이 감동을 받았는지 아닌지 안다. 열렬한 호응이 있으면 나 역시 눈물이 나더라."

한국사람들은 북한 무용에 대해 잘 모른다. 조 단장의 춤을 보고 다들 놀란다. 남한과 달리 바깥 쪽으로 움직이는 어깨 동작을 비롯해 목, 손목 등 몸 곳곳을 놀리는 북한 무용은 훨씬 역동적이다. "음악도 경쾌하고 빠르고 박력이 있다. 그러니 활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용 활동을 하는 까닭은 결국 "탈북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 실제 모습을 알리기 위해서"라며 눈을 빛냈다. "북한 예술을 알리는 것이 뿌듯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SBS TV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대회-스타킹'에 '북한미녀'로 출연, 물동이춤을 선보이는 등 방송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사람도 남한의 정서에 맞춰 예술로 호흡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북한 예술이라고 하면 무조건 합창 또는 집단체조를 떠올리는데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북한의 음성으로 남한의 트로트도 부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웃음)"

한국인과 북한사람의 화합에 보탬이 되는 것이 바람이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지만 북한의 예술로 사람들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본다. 세대가 계속 바뀌어서 북한이라는 존재가 특이하고 색다르다는 생각을 하는데 무용으로 호감을 가지면 통일이 된다고 해도 예술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대학축제 등에 가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더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 '북한판 소녀시대'로 통하며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모란봉 악단'은 "우리 때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역시 뛰어난 이들일 것이다. 아무나 그렇게 나서지는 못한다"고 평했다.

"북한에도 수준 높은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못 산다는 인식이 강한데, 북한 예술도 고급스럽고 수준이 있다. 무용가로서 그런 점을 보여주고픈 소망이 있다. 북한 무용이 이렇게 '역동적이면서 현란하구나'라는 인식을 주고 싶다. 5000만 국민들이 일부분만 보고 평가를 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탈북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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