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명훈, 프랑스 파리로 출국…서울시향 앞날은?

정명훈(62)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출국했다. 31일 오후 2시께 대한항공 편으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아들인 지휘자 정민(31) 등 가족이 함께 했다. 파리에는 부인인 구모(67)씨가 머물고 있다. 

정 감독의 서울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임기는 이날로 끝난다. 지난해 말 1년 재계약했다. 최근 3년 재계약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했으나, 서울시향 이사회에서 재계약이 보류되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곳에 몸 담은 지 10년 만이다. 2005년 서울시향에 예술고문으로 영입된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아왔다. 

전날 저녁 예술에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가 정 감독의 서울시향 마지막 공연이었다.
공연 타이틀은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의 4악장 '환희의 송가'와 겹쳐진다. 결국 서울시향 단원과 사무국 직원, 그의 팬들이 정 감독에게 보내는 송가(頌歌) 또는 송가(送歌)가 됐다.

정 감독은 65분간 '합창'을 연주한 뒤 단원 85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일부 단원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석별을 안타까워했다. 정 감독은 그들의 볼을 쓰다듬어줬다. 약 15분 간 이어진 이 광경을 지켜본 청중은 내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 마련한 꽃다발을 정 감독에게 끊임없이 건넸다. 

지난 6월14일 15년 간 잡아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받았던 환송과 비교하면 쓸쓸했다. 정 감독은 당시 약 2시간30분 간의 연주를 끝내고 라디오 프랑스 필의 마티외 갈레 대표에게 소개를 받은 뒤 단원들과의 추억 등 이 단체를 이끌어온 소감을 객석에 전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프랑스 시민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그에게 영예를 돌렸다. 정 감독의 서울시향 마지막 무대를 접한 청중은 반대로 눈물을 훔쳤다. 

공연을 마치고 백스테이지에서 약 20분 간 단원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눈 정 감독은 기자들을 만나 "잘했어 너무 잘했어. 오케스트라도 축하하고 너무 잘했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이) 계속 잘하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마지막 공연에 대한 직접적인 소회는 밝히지 않았다. 당분간 파리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향의 앞날은?

정 감독이 일궈낸 성과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쓸쓸한 퇴장을 한 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서울시향이다. 특히 예술감독 공백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 예술감독은 서울시향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국내 마니아층을 양산했다. 정 감독을 영입하기 직전 38.9%이던 유료 객석 점유율은 10년 만인 올해 92.8%를 기록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발돋움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시향을 출연기관으로 둔 서울시가 일부 부정적인 여론에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며 재계약하려고 한 이유다. 

2008년부터 UN 산하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친선대사로 위촉돼 활동해면서 북한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2011년 평양 방문과 2012년 파리에서 북한의 은하수 관현악단과 프랑스의 라디오프랑스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합동 연주를 지휘한 정 감독 덕분에 서울시는 평양 공연을 추진할 수 있었다. 

스타 연주자는 많지만, 정명훈급 지휘자 인력 풀은 부족한 한국 클래식계 현황에서 그의 존재감을 대신할 거물은 쉽게 구할 수 없다. 외국인 지휘자 영입도 방안이기는 하나, 이 부분은 논의에서 선임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선택지다. 

단원들의 기량 저하와 일부 단원들의 이탈도 걱정이다. 서울시향 단원들은 정 감독과 꾸준히 호흡을 맞추며 실력을 쌓아왔다. 정 감독 없이 당분간 연습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특히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 등 정 감독 이후 서울시향에 합류한 외국인 연주자들의 행보도 관심사다. 루세브는 정 감독이 15년 간 지휘봉을 잡아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도 겸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9일부터 시작하는 서울시향 정기공연 9회 무대의 포디엄이 문제다. 서울시향은 대체 연주자를 물색 중이다. 동시에 상당 부분 팔린 공연 티켓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서울시향 연주력 자체가 탄탄해진 건 사실이지만, 지휘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만큼 그의 팬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가 변수다. 일부에서는 서울시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예매 취소를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있다. 

서울시향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정 감독 후임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정 감독 vs. 박현정 전 대표, 진실게임 양상 

정 감독이 떠났지만 서울시향 사태는 오히려 연장전에 돌입했다. 정 감독이 서울시향을 10년 만에 떠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박현정(53) 전 대표 간 공방이 진실 게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정 감독은 29일 서울시향 단원과 직원들에게 '서울시향 멤버들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 "서울시향의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날 저녁 이탈리아 식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송년회에서도 박 전 대표와 사무국 직원들 사이에서 불거진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박 전 대표가 반발했다. 30일 언론사에 '정 예술감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 감독의 발언 '한 사람의 거짓말'을 겨냥,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한번 인격살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정 감독에게 촉구했다. 

서울시향 단원들은 그러나 박 전 대표를 다시 비판했다.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 시작 전 청중에게 자신들이 쓴 호소문을 직접 배포했다. 막말·성추행 의혹에 대해 "인권유린"이라고 규정했다. "박 전 대표의 취임 이후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사무국 직원 27인 중 12인이 퇴사하고, 박 전 대표의 퇴임 이후에도 직원들은 불안,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며 "박 전 대표의 사무국 직원들 유린으로 사무국 직원들, 서울시향 단원, 정명훈 감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앞서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은 지난해 12월2일 박 전 대표이사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냈다. 사무국 직원 일부는 당시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억울해하면서도 박 전 대표는 사과하며 퇴진했다. 동시에 사퇴 기자회견 전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자신을 겨냥한 호소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8월 경찰은 박 전 대표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시향 직원들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울시향 직원들이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돌변했다. 경찰은 오히려 박 전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남성 직원 A가 거짓말을 했다며 지난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여기에 최근 정 감독의 부인까지 사태에 연루됐다는 혐의가 나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정 감독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구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것이다. 일부 서울시향 직원들을 통해 박 전 서울시향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정 감독 측은 그러나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다.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은 "정명훈 지휘자의 부인은 직원들의 인권침해 피해의 구제를 도왔을 뿐이지 허위사실의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씨 등이 경찰 수사에 적극 임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 지름길이나, 이는 요원해보인다. 그녀는 미국 국적자다. 자진 입국하지 않는 한 한국 경찰이 신원을 강제로 확보할 길이 없다. 

정 감독 측은 그럼에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씨가 허위의 사실을 날조해 그것을 직원들을 사주해 배포하게 만들었는지, 실제 피해를 당한 직원들을 도와 준 것인지는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지평은 "구씨가 입건됐다는 사실은 호소문 배포에 관련돼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지 결코 호소문 배포 의사가 없는 직원들을 사주했다거나 그 호소문 내용이 허위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봤다. 지평은 구씨의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명예훼손한 것에 대해 고소를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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