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홀, 서울시향 콘서트홀 등 대형 클래식 콘서트홀 건립이 지지부진하다. 대신 작지만 알찬 공연장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27일 밤 개관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는 오프닝 기념 공연으로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그리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등을 들려줬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연주하는 손열음의 우아함 속에 깃든 날카로운 소리, 검투사처럼 힘이 넘치는 임지영의 강렬한 소리는 잔향 시간이 1.5초로 실내악에 최적화된 이 공연장의 특성에 묻어 귓가를 부드럽게 감돌았다.
390석의 이 공연장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00억원을 기부, 연세대 백양로에 지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당분간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대학 안에 위치한 만큼 젊고 신선하다.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된 이스라엘의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11월4일), 장애를 극복한 독일의 호르니스트로 팝스타 스팅과도 투어를 벌리은 펠릭스 클리저(11월10일),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 음악들을 만나볼 수 있는 무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클래식 음악, 재즈, 그리고 비틀스'(11월 17~18일) 등이 준비된다. 11월 15~16일에는 연세대 음악대학과 일본의 도쿄예술대학교의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연세대–도쿄예대 프렌드십 콘서트'도 마련된다.
최근 이태원에 들어선 아이리버의 음악공간 '스트라디움'도 주목할 만하다. 클래식 연주자뿐 아니라 대중음악계에서 고급화를 꾀하는 이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인데 1만여장의 나무벽돌로 외벽을 마감했다. 모던한 외형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가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스트라디움 스튜디오. '비틀스'가 음반을 녹음한 곳인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 설계자인 샘 도요시마가 설계·관리·감독했다. 녹음 스튜디오와 공연장 기능을 겸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사도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통해 벽을 열고 닫아 잔향 효과를 조절해 두 기능을 가능케 했다. 공연장으로는 최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최근 팝페라가수로 변신한 박기영이 이곳에서 미디어를 상대로 쇼케이스를 열었다. 김광석의 미완성곡에 일본 기술서적을 번역하는 이지혜씨가 노랫말을 붙여 완성한 '그런걸까'를 성시경이 맨 처음 부른 장소도 이곳이다. 다음 주에는 정통 클래식 연주자로 2005년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피아니트스 임동혁이 쇼케이스를 연다.
연극·뮤지컬을 위한 소극장이 밀집된 서울 대학로 인근에 들어선 JCC재능문화센터도 눈길을 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혜화문을 거쳐 서울 성곽으로 오르는 길에 위치했다.
JEI재능교육을 이끄는 재능교육 그룹이 세운 이 공간은 공연과 전시 공간인 아트센터와 강연·토론·퍼포먼스·연구 등을 위한 크리에이티브센터 등 2개 동으로 구성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물 중 서울 사대문 안에 세워진 1호다. 콘서트홀은 아트센터에 위치했다. 1층 136석·2층 41석 등 총 177석이다. 안도 다다오와 정상급 음향 컨설턴트인 나가타 어쿠스틱스이 협업했다. 모든 좌석에 균등하게 소리의 밀도를 공급했다. 우드룸 플레이트 마감으로 사운드의 명료함도 살렸다. 소음 차단율도 좋아 어쿠스틱 녹음도 가능하다.
개관 기념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회를 11월 17일과 24일,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무대를 12월에 마련하는데 앞으로는 신인을 위한 자리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클래식 공연장은 아니지만 올해 5월 이태원에 문을 연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도 주목할 만한 공연장이다. 스트라디움 길 건너 맞은 편에 있어 이태원을 음악의 새로운 성지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건물 지하 2층에 자리한 공연장 '언더 스테이지'는 가변식으로 객석 설치가 자유롭다. 스탠딩으로 약 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전인권, 김창완밴드, 혁오 등 대중음악 신에서 음악성으로 이름 난 이들이 무대에 올라 음향 등에 만족감을 표했다.
영국의 팝스타 엘턴 존이 11월27일 오후 8시 이곳에서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엘튼 존'으로 공연을 펼칠 예정이라 더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거장이 각종 장비를 갖춘 대형 공연장이 아닌 이 소극장 규모의 극장을 택해 믿음을 준다. 역시 500명만 볼 수 있다.
음악계 관계자는 소극장이 점차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음향이 좋은 소극장에서는 대형 공연장이 줄 수 있는 거대한 사운드의 쾌감과 다른 빽빽한 밀도감을 느낄 수 있다"며 "클래식음악도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 조금이나마 날 것으로 소리를 들려주고 듣고 싶은 뮤지션과 청중의 욕구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