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엔터테인먼트는 3대 가요기획사인 SM·YG와 다르다. 두 곳의 회장인 이수만(62)·양현석(44)과 달리 JYP의 수장인 박진영(42)은 '아직' 현역이다. 스스로 '딴따라'를 자처하며 소속 가수들과 함께 무대를 누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올해도 무대를 종횡무진 중인 박진영은 4일 밤 서울 신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데뷔한 지 5~6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1994년 1집 '날 떠나지마'로 데뷔 당시 비닐 바지와 손으로 엉덩이를 쓰다듬는 춤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가 웃었다.
이날은 회사의 대표로서 박진영의 비전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평소 뮤지션의 이미지가 강했던 박진영은 다른 CEO 못지 않은 구상을 내비쳤다.
JYP의 목표는 "시가총액 2~3조"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지난 3년간 일단 시가총액 1조 벽을 어떻게 넘을지 고민했어요. 다행히 제가 미국생활에서 얻어온 것은 미국 음반사 내부 구조에요. 어떻게 조직이 돼 있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배웠죠.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등 4대 메이저 음반사가 유대인들과 친한데 그들이 회사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자본은 어떻게 모으고, 회의는 어떻게 하는지 배웠어요. 그 모양대로 회사를 만들기 위해 3년을 테스트했습니다."
그래서 JYP퍼블리싱을 차렸다. 작곡가를 모으고 키우는 회사다. "지금 30여 명을 모았고 내 역할을 계승할 사람을 양성하고 있어요."
시가총액 1조원을 넘기려면 무조건 대량생산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SM이나 YG를 보더라도 한 해에 12개 이상의 앨범을 못 내요. 그런 구조면 1조원을 넘을 수가 없죠. 워너뮤직이나 유니버설뮤직을 보면 레이블이 열 개가 있습니다. 처음 빅히트와 에이큐브로 실험해보고 다른 쪽에서는 퍼블리싱을 했죠. 하지만 모든 의사결정에는 제가 참여하지 않았어요."
스티브 잡스가 죽고 애플 주가가 반 토막 난 것에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한 명에게 의존해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거죠. 이 기회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어요. 회사를 한 명의 '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고자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대량의 레이블을 만들고 퍼블리싱하자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는 대신 "시스템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잘못되면 보완하는 형식으로 한다"면서 "개인의 힘으로는 1조원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퍼블리싱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 3년간 실험을 해서 데이터가 축적됐습니다."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기도 한 박진영은 데뷔 해부터 20년간 42곡의 1위곡(지상파 음악방송, 멜론 주간 순위)을 작곡했다.
"진짜 재수가 좋았죠. 우리나라에 빌보드 같은 차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처음에는 지상파 방송 1위를 기준으로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애매하고, 멜론도 그렇고. 그래서 두 가지 기준을 합쳐보니 42곡이 나오더라고요."
그간 만든 곡은 무려 508곡이다. "제일 마음에 든 2곡은 1위를 못했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작곡을 시작할 때 모니카의 '비포 유 워크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라는 곡을 좋아했어요. '언젠가 저런 곡을 하나 쓰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반 발라드, 반 댄스풍의 노래예요. 제가 댄스곡을 좋아해요. 스승은 (발라드 히트곡을 다수 낸) 김형석씨죠. 그래서 이 두 개를 합치면 그런 장르가 나와요. 하하하."
본인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웠던 곡은 2001년 6집 '게임' 타이틀곡 '난 여자가 있는데'다. "반 발라드곡인데 반 댄스곡으로 춤도 추고 그랬죠. 그때 처음으로 만족이란 것을 느껴봤던 것 같아요. 이후 '너뿐이야'를 썼을 때 이게 멜로디도 분위기도 '난 여자가 있는데'보다 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너뿐이야'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20년간 가장 힘들었던 때는 2008년 미국의 투자 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월스트리트 전체가 침체했을 때다. 당시 미국 4대 메이저 음반사 역시 크게 타격을 받았다.
"그 회사들이 무너지니까 그곳에서 '위험성이 있는 것들은 다 접어'라는 지시가 내려졌죠. 결국 내 것이 제일 위험했어요. 준비했던 지소울, 원더걸스, 임정희, 민 등의 프로젝트가 다 무너졌죠. 제 인생의 4년이란 시간을 그것만 보고 살았는데. 그 충격이 한 달 정도 갔어요. '신이 있다면 왜 나에게 이런 희망을 줘서 모든 걸 걸게 한 다음에 음악 외적인 말도 안 되는 일로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반면 제일 행복했던 때는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윌 스미스에게 곡을 팔았을 때"라고 즐거워했다. "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온 엄청난 가수가 녹음실 안에서 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이해가 안 갔었어요. 녹음실 뒤에 비행장이 있는 데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밥 먹고 오고. 모든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JYP에는 리더 선예 결혼 등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2PM, 2AM, 미쓰에이, 갓세븐 등 내로라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소속됐다.
하지만 박진영은 "재능 있는 아이들을 뽑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와 친하고 착하고 올바른 아이들만 뽑아요. 지난 20년간 우리 회사에서 불법 사건은 한 건밖에 없었습니다. 닉쿤의 음주 사고죠. 그게 사실은 우리 회사가 얼마를 벌었느냐보다 훨씬 자랑스러워요"라고 눈을 빛냈다.
"우리 회사는 저나 연예인이나 직원 모두 불법, 탈법이 없었어요. 소속 가수들은 현금으로 주는 행사는 못 가죠. 룸살롱 같은 곳 역시 못 가요. 만약 룸살롱 가면 퇴사입니다. 회사는 천천히 잘 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가족들이 올바르고 정직하게 생활하는 거죠. 조금의 편법이라도 행한 직원은 나가야 해요. 예전에 PD 사건 터지고 검찰 수사받을 때도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오히려 그쪽에서 '어떻게 이런 회사가 다 있느냐. 비자금 없으면 못산다'고 하더라고요. 검찰, 국세청은 우리 회사 건들지 않습니다. 'JYP는 바보들이다. 내버려둬도 된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개인의 꿈은 "60세가 됐을 때 팬들 앞에서 지금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라고 웃었다.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아요."
박진영이 8일 오후 6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치는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 '42 No.1'은 그의 60세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JYP 소속 가수 핫펠트(HA:TFELT), 선미, 15&, 갓(GOT)7, 버나드 박 등이 함께한다. 박진영이 만든 508곡 중 1위에 오른 곡의 원곡가수들도 박진영의 초대로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