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초고가 대출 막고 분할상환?…혼돈의 전세대출 시장

고가 전세대출 제한 두고 추측 난무…혼란 가중
금융당국 "고가 전세보증 제한 확정된 것 없어"

 

[파이낸셜데일리 송지수  기자]  정부가 15억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자금 대출도 중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전세시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고가 전세에 대한 SGI서울보증의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은행이 취급하는 전세대출은 SGI서울보증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택금융공사(주금공) 등 3곳의 공적 보증기관에서 보증해준다. 공공기관인 주금공과 HUG는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전세가격 상한이 각각 5억원(수도권)으로 정해져 있지만, 민간 기관인 SGI서울보증은 별도의 상한 기준이 없어 고가 전세 대출도 보증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주거 취약계층 등 서민들을 위한 전세자금 보증이 값비싼 전세대출에 활용되는 것이 맞느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또 고소득자들이 고액의 전세대출을 소위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어, 집값 상승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가 전세대출에 대한 SGI서울보증의 보증까지 막히게 될 경우, 서울 강남권 등 전세 가격이 높은 지역 전세 세입자들은 더 이상 시중은행에서 전세대출 받을 수 없게 된다.

SGI서울보증은 구체적인 시행 시기나 재계약 증액분에 대한 보증 여부 등에 대해선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단 입장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고가의 기준이 9억원 또는 15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청년창업가들과의 간담회 후 "규제 대상인 고가 전세 기준은 9억원보다 높을 것"이라고 밝혀 15억원이 유력한 것이 아니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 위원장은 "최근 전셋값이 많이 올라 일률적으로 제한할 생각은 없다"며 "9억원이 넘는 전세가 상당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률적으로 제한해 실수요자분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만 초고액 전세에 대한 지적은 SGI서울보증이 중심이 돼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전셋집을 재계약하는 경우에 한 해 한 차례 정도 전세금액과 관계없이 보증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지난해 1월에도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SGI서울보증의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한 바 있다. 당시에도 전세대출 중단에 따른 급작스러운 주거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SGI 전세대출보증을 이미 이용 중인 고가주택 보유 대출자는 만기시 당해 대출보증 연장을 허용하되, 시가 15억원 이하 고가 1주택 대출자가 증액없이 대출을 재이용할 경우 한시적으로 1회에 한해 보증을 허용했었다.

이처럼 시장에서는 전세대출 규제와 관련해 각종 추측이 나돌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고액 전세주택에 대한 규제여부와 적용대상 및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고,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모호한 입장이어 전세 세입자들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만약 고액 전세 대출 제한이 현실화 될 경우, 결국 현금 부자들만 대치동 등 강남권에서 '전세살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3년간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 84㎡ 아파트 전셋값이 15억원을 넘는 경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8년 전용면적 84㎡ 기준 전세보증금이 15억원 넘는 서울 아파트는 단 3곳이었지만, 올해에는 53곳으로 늘었다. 특히 전용 84㎡ 기준 전세보증금이 15억원 넘는 아파트는 강남구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세의 월세화 또는 반전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환경이 좋은 곳에 서민들은 전세로 살기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라며 "전세가 반전세로 전환되는 등 주거비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금액을 기준으로 규제를 하면, 기준선 보다 싼 전셋집에 수요가 몰리면서 전셋값을 전반적으로 밀어올릴 가능성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가 전세대출을 막으면 전세값이 낮아질 것이란 생각을 정부는 한 것 같은데 시장은 알 수 없다"며 "전세가격이 위로 맞춰질지 아래로 맞춰질 지는 두고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초고가 전세대출 보증 제한은 지난달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에 포함시키기 위해 검토했던 방안 중 하나였다"며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관리방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당분간 고가 전세대출 규제가 시행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정부가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의무화할 것이란 일각의 보도에 대해서는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금융위는 내년부터 전세대출 분할상환 우수 금융회사에 정책모기지 배정을 우대하는 등 전세대출의 분할상환을 유도하고 인센티브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전세대출 분할상환 관행을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밝히자, 대출자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대출을 받자마자 원금을 나눠갚게 되면, 지금보다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 금액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금융위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에 따라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인센티브' 부여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으며 앞으로도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위의 이같은 해명에도 당분간 시장의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줘 '유도'를 하겠다지만 금융사 입장에선 아무래도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정부의 방침에 내년부터 전세금 대출을 받자마자 원금을 나눠갚도록 대출자들에 요구하는 은행들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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