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8월 30일(한국시간) 유럽 프로축구 2011~2012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의 막바지에 멀리 영국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박주영(29)이 프랑스 리그의 AS모나코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의 '빅4' 중 하나인 아스날로 전격 이적한다는 소식이었다.
아스날이 어떤 팀인가.
박지성(33·PSV에인트호벤)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못잖은 명문구단이다. EPL 우승 13회·준우승 8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세계 최고(最古)의 컵대회인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우승 10회·준우승 7회, 칼링컵(캐피털원컵 전신) 우승 2회·준우승 5회 등을 기록한 명문구단이자 강팀이다.
또한 박주영의 이적료는 350만 유로(약 51억원)로 같은 시기 박지성이 맨유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옮길 때의 이적료 250만 유로(약 36억원)를 압도했다. 여기에 병역 면제 시 추가 이적료 300만 유로(44억원)까지 있었다. 박주영이 2012년 8월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리스트 자격으로 병역 면제를 받게 되면서 아스날이 AS모나코에 지불한 박주영의 총 이적료는 650만 유로(약 95억원)가 됐다.
게다가 2011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4년 계약에 주급은 4만5000 파운드(약 8000만원)에 달한다.
하위권의 허접한 구단도 아닌 상위권의 명문 구단이 박주영에게 그처럼 특급 대우를 해주자 국내에서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2년 반이 지난 2014년 1월29일 현재 한국 축구계는 귀를 쫑긋 세우고 유럽에서 다시 들려올 한 가지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 미국에서 전지훈련 중인 축구대표팀 홍명보(45) 감독의 두 귀 중 하나도 유럽을 향해 고정돼 있을 지도 모른다.
바로 2월 1일 오전 8시, 그러니까 현지시간으로 1월 31일 자정에 닫히는 1월 이적시장의 대미를 장식할 박주영의 소식이다.
박주영은 아스날 이적 후 비상은 커녕 오히려 끝도 없이 추락했다. 당초 박주영은 프랑스 2부 리그로 강등되던 AS모나코를 떠나 군 면제 옵션 포함 500만 유로(73억원)에 프랑스 1부 리그(리그앙) 상위권 팀인 릴OSC로의 이적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아스날과 아르센 벵거(65) 감독은 박주영을 데려오기 위해 AS모나코에 더 많은 몸값을 부담하면서 빼돌리다시피 그를 데려왔다. 당시 벵거 감독은 "박주영과 계약하게 돼 기쁘다. 박주영의 영입으로 우리 공격진에는 힘이 더해질 것이며, 스쿼드에 가치있는 영입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박주영에게 득점력 높은 선수들에게 허용되는 등번호 9번이 주어진 것은 그같은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첫 시즌부터 박주영과 벵거 감독은 어긋나기 시작했고, 박주영은 총 6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2~2013시즌을 앞두고 아스날은 주급이라도 아끼겠다는 계산으로 박주영을 2012~2013시즌에 스페인 프리메라 리그의 하위권 팀인 셀타 비고로 임대해 버렸다. '1시즌 임대 후 완전 이적'이라는 옵션이 있었지만 셀타 비고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박주영을 아스날에 되돌려 보냈다. 총 22경기 3골 1도움만을 기록할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이었다.
돌아온 박주영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있었다. 9번은 이미 2012~2013시즌에 영입된 폴란드 폭격기 루카스 포돌스키(29)의 등을 장식했고, 박주영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30번이 떨어졌다.
2013~2014시즌 전반기 아스날에서 박주영은 '주급 도둑'에 지나지 않았다. 공격진에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박주영은 '전력 외'로 분류돼 교체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9일까지 시즌 절반이 훨씬 지났는데도 박주영은 EPL도, UEFA 챔피언스리그도, FA컵도 아닌 캐피털원컵 16강 첼시전(2013년 10월30일)에 아룬 램지(24)와 교체돼 후반 36분에 들어가 추가시간 4분까지 총 13분 동안 뛴 것이 전부다.
새해 들어 박주영에게도 새 길이 열리는 듯 했다. 주전 공격수들이 좀처럼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벵거 감독이 관람석 신세였던 박주영을 벤치에라도 앉혀 놓은 것이다.
박주영은 지난 5일 토트넘과의 2013잉글랜드 FA컵 3라운드(64강)를 통해 67일 만에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리더니 14일 아스톤 빌라와의 EPL 21라운드의 교체명단에도 포함됐다. 2012년 1월22일 맨유전 이후 약 2년 만에 EPL 교체명단에 기재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경기 모두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주영이 다시 벵거 감독의 구상에 포함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특히 19일 EPL 22라운드 풀럼전에서도 교체명단에 오르면서 이날 만큼은 기회가 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또다시 교체 명단이 전부였다.
급기야 박주영은 25일 FA컵 4라운드 코벤트리시티(3부 리그)전과 29일 EPL 라운드 사우샘프턴전에서는 다시 교체명단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물론 박주영은 계약 기간 동안 주급만 꼬박꼬박 챙기면서 살아도 된다. 병역 면제도 받았으니 한결 여유롭다. 이미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경험했으니 브라질 월드컵에 연연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박주영은 축구선수다. 돈보다 명예보다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은 야망이 있다. 그 야망은 일단 월드컵 그라운드이고,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아스날보다 더 세계적인 팀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라질 월드컵 본선 출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박주영이 '투명인간'으로 지내며 경기 감각을 잃어가는 사이 지동원(23·아우크스부르크)·김신욱(26·울산 현대) 등 후배들이 계속 성장했다. 이제는 제 아무리 박주영이라도 주전 경쟁은 커녕 승선조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병역 기피 논란을 빚은 박주영에 대해 '보증'까지 섰을 정도로 신뢰감을 갖고 있는 홍 감독이라고 해도 이제 해줄 수 있는 것은 29일 전지훈련 장소인 미국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에서 말한 "아직 박주영에게 어떤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까지 기다려보고 판단을 내리면 된다"는 원론적인 답변밖에 없다. 그나마도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박주영으로서도 브라질 월드컵을 노리는 유럽 무대의 다른 선수들처럼 어서 빨리 더 많은 출전 기회가 보장되는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1월 이적시장의 문이 너무 빨리 닫히고 있다.
실제로 벵거 감독은 25일 가진 인터뷰에서 "박주영을 영입하겠다고 제의해 온 구단은 없다"고 고백했다.
최근 유럽 스포츠 매체들이 앞다퉈 박주영에 대해 거침 없이 혹평을 쏟아내는 것도 박주영이 앞길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영국 스포츠 매체 톡스포트는 지난 21일 '잊혀진 EPL 베스트 11'이라는 제목으로 경기에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선수 11명을 꼽았다.
박주영은 스테판 요베티치(25·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공격진에 이름을올렸다. 이 매체는 "박주영은 2011년 아스날 합류 이후 지금까지 EPL에서 단 한 번 나섰다"며 "일부는 박주영이 실제 존재하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아스날 선수 명단에 올라있다"고 비아냥 거렸다.
22일에는 프랑스 스포츠 매체 르10 스포르트가 '아스날 벵거 감독의 영입 실패 리스트 톱10'을 뽑으면서 박주영을 2위에 랭크했다. 1위는 같은 시기에 영입됐다가 지난해 브라질로 돌아간 안드레 산투스(31·CR 플라멩구)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보낸 첫 번째 시즌에서 고작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후 그는 벤치에만 머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주영은 지난해 9월 이탈리아인 에이전트를 해고하고 여러 에이전트를 통해 이적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EPL·프리메라리가·리그앙 등 박주영이 거친 리그들은 이미 박주영에 관해 너무 잘 알아버렸다. 분데스리가 구단들의 멤버 영입은 이제 사실상 다 끝난 상태다. 그렇다고 중동이나 중국 리그로 온다는 것은 박주영 본인은 물론 한때 '축구천재'로 일컬어진 그에게 여전히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는 국내 축구계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1월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박주영이 어떤 성과를 일궈내 갑오년 새해 까치를 통해 소식을 전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