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통화정책의 향후 방향과 관련, 정책의 여력을 아껴둬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재정연구포럼에 참석해 '최근 대내외 여건과 향후 정책방향'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경제재정연구포럼은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이다.
그는 "(한국은) 제로금리까지 갈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앞으로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려면 통화정책 여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국제 금융시장이 급변할 때는 외국 자본의 유출입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모든 것을 재고 또 재고 생각하면서, 어찌 보면 더디고 느려 보일지는 모르지만 한은은 성장도 보고 금융안정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리 방향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성장, 금융안정, 기대효과, 예상된 부작용 등을 다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도 열심히 하겠지만 재정·구조개혁 정책이 (통화정책)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 나라 중앙은행이든 다 같은 입장에서 똑같은 말을 한다"며 "다른 중앙은행 총재들이 말하기를, '통화정책은 만능 통치약이 아니다', '통화정책은 문제를 해결할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고 한다"고 인용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한국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대내적으로도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추가경정(추경) 예산 등 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주요국 재정여력 추정(2014년 기준)' 자료를 제시하면서 한국의 재정여력이 주요국 중 상위권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여력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채무의 최대치와 현 국가 채무 수준과의 차이를 뜻한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여력 순위는 노르웨이에 이어 두번째로 나타났다. 뒤이어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순이었다.
그는 "(한국은)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고용 증가 등에 재정이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구조개혁을 "그야말로 우리 경제가 가진 모든 비효율성 제거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재정·통화 정책의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구조개혁은 하지 않고 재정·통화 정책만 시행하다 보니 여력이 고갈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저성장·저물가 기조는 일시적인 요인으로 볼 수 없다"며 "(저성장·저물가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구조개혁과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조개혁이란 것은 어느 나라든 당연히 어렵지만 구조개혁의 타이밍을 놓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발언했다.
그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로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여성의 저조한 경제활동참가율 ▲과잉규제 ▲저출산·인구고령화 ▲가계·기업 부채 등을 예로 들었다.
이날 강연에는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의원 3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