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미 합동실무단은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해 "미국 내 실험실에서의 불완전한 사균화(死菌化) 처리로 인해 극소량의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포자가 한국으로 배송돼 발생한 사고"라고 규정하면서도 "주한미군은 샘플의 반입, 취급, 처리 과정에서 관련 규정과 절차를 준수했고 안전하게 제독·폐기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미 국방부의 샘플 폐기 명령에 따라 활성화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즉각 폐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오산기지에 배송된 탄저균 샘플이 실제로 살아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샘플 반입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안전하게 폐기됐다는 게 한미 합동실무단의 결론인 셈이다.
◇샘플 반입 목적과 과정은?
국방부와 한미 합동실무단의 설명을 종합하면 미국은 '주피터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 4월24일 사균화된 탄저균 및 페스트균 검사용 샘플(각 1㎖)을 주한미군 오산기지로 발송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북한의 생화학무기 위협에 대비해 2013년부터 미국의 차세대 생물감시 시스템인 '주피터(JUPITR·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프로그램'을 한국 내에서 진행해왔다.
미국 메릴랜드주(州) 소재 에지우드화생연구소에서 발송된 샘플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규정에 따라 3중 포장돼 민간 운송업체인 페덱스(FedEx)에 의해 4월26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해당 샘플은 4월28일 한국세관에 주한미군용으로 수입신고 됐고, 29일 오산기지로 배송됐다. 이때 주한미군은 반입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상 사균화된 검사용 샘플을 반입하는 경우 통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샘플 처리와 관리, 폐기 등은 어떻게 됐나?
샘플에 대한 시험은 5월20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오산기지 생물 검사실에서 이뤄졌다. 희석 처리된 샘플은 분석·식별 장비의 성능 시험과 사용자 훈련을 위한 시험에 사용됐다.
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는 두 번째 시험이 진행된 다음날인 5월27일 "주한미군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샘플이 배송됐다"는 내용을 우리 국방부와 외교부, 보건복지부 등에 통보했다.
주한미군사는 같은날 미 국방부로부터 샘플 폐기 지시를 받았다. 이에 주한미군사는 보관 중이던 잔여 샘플을 8.25% 차아염소산나트륨 용액에 침수시켜 제독(除毒)한 뒤 폐기했다.
이후 7월11일 '한미 생물방어협력 관련 합동실무단'이 설치됐다. 같은달 24일에는 미 국방부의 자체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탄저균 샘플 사균화 과정에서의 과학적·기술적 문제로 사고가 발생했으며,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향후 문제 해결 시까지 모든 탄저균 샘플 배송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한미 합동 조사 결과…"사후조치 문제 없었다"
한미 합동실무단은 8월6일 오산기지 현장 평가에 나섰다. 오산기지 생물 검사실에서 검체를 채취해 유전자·배양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배송된 탄저균 및 페스트균 샘플은 모두 음성 판정이 내려졌다.
검사실 시설과 장비 등에 대한 점검도 이뤄졌다. 검사 결과 오산기지 생물 검사실은 생물학작용제를 배양하거나 에어로졸(aerosol·공기와 같은 기체 내에 미세한 형태로 균일하게 분포돼 있는 액체나 고체의 입자) 샘플을 시험할 수 없는 곳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장비 성능 시험을 위한 실험실로 살아있는 탄저균 실험을 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게 한미 합동실무단의 설명이다.
이번 사고로 인한 노출 우려자는 미 육군 10명과 미 공군 5명, 미 군무원 7명 등 총 22명으로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검사실은 잠금장치가 구축돼 있고, 관리 인원의 동행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며 "외부 인원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전했다.
노출된 22명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과 함께 예방적 항생제가 투여됐다. 이후 이들 전원에 대한 모니터링과 추적 관리가 60일 동안 진행됐고, 현재까지 어떠한 감염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미 합동실무단은 밝혔다.
◇"오산기지 시험 외에도 주한미군 2009~2014년 15차례 탄저균 샘플 반입"
한미 합동실무단 조사 결과, 주한미군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5차례에 걸쳐 사균화된 탄저균 샘플을 반입해 분석·식별 장비의 성능 시험과 사용자 교육훈련에 사용하고 폐기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다만 이 결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반입사례를 샅샅이 추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번에 밝혀진 '15차례 반입' 역시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확인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5월 두 차례 이뤄진 오산기지 시험까지 주한미군은 국내에서 총 17차례 탄저균 시험을 한 것이다. 앞서 주한미군은 탄저균 실험이 올해 오산기지에서 처음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으로 반입되는 생물학 검사용 샘플의 한국 내 반입 절차와 관련한 합의권고안을 마련했다.
합의권고안에는 ▲주한미군이 검사용 샘플 반입 시 우리 정부에 발송·수송기관, 샘플 종류·용도·양, 운송방법 등을 통보 ▲한 쪽의 요청이 있을 시 빠른 시일 내에 공동 평가 실시 ▲관세청이 물품 검사를 희망하는 경우 주한미군 관세조사국과 협조해 합동 검사를 실시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SOFA 개정은 추진되지 않을 전망이다. SOFA 9조5항(통관 및 관세와 관련 조항)은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미군 구성원, 공용 봉인이 있는 미국 군사우편, 미군 군대에 탁송되는 군사화물은 세관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공동성명 "北 생물작용제 13종 보유"…'탄저균 재발방지책' 즉시 발효
한편 한미 양국은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과 로버트 헤드룬드 주한미군사 기획참모부장(해병 소장) 명의로 된 공동발표문을 통해 "북한은 탄저균과 페스트균 등 총 13종의 생물학작용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테러 또는 전면전 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 간 연합 훈련 실시, 생물방어 협력 확대, 한미 생물방어연습 지속 추진 등 우리 국민과 한미 연합군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은 또 점증하는 북한의 생물 위협과 전 세계적인 생물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한미 간 생물방어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이에 양국은 SOFA 합동위원회 제196차 회의를 열어 합의권고문 개정안에 서명했다. 합의권고문 개정안은 SOFA 합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신재현 외교부 북미국장과 테런스 오샤너시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서명함으로써 즉시 발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