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 송옥이…"
7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65년 만에 만난 딸은 백수(白壽)를 앞둔 아버지를 보자마자 흐느꼈다. 전쟁터로 끌려가는 길에 마주친 작은 형님에게 "송옥이에게 신발 사다주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던 구상연(98) 할아버지는 두 손에 '꽃신'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늙어버린 두 딸과 재회했다.
60여년 만에 재회한 이산가족들은 서로를 알아보고는 곳곳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24일 오후 3시30분부터 북측 주최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 행사에 참석한 이산가족들은 세월을 뛰어 넘는 혈육의 정을 나누며 탄식과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호텔 2층 연회장에 먼저 도착한 북측 상봉단 188명은 번호에 맞게 각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차분하게 남측 방문단을 기다렸다.
3시15분께 남측 방문단 90가족 254명이 연회장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북측 가족들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가족을 찾으러 몰려들었다. 곳곳에서는 탄식과 울음이 터져나왔다. 테이블에 앉은 북측 가족들도 가져온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구상연 할아버지와 동행한 남측 아들 형서(42)씨는 아버지의 북측 큰 딸 송옥(71)씨에게 "아버지가 신발을 못 사다준 것이 평생 한이 돼서 이번에 가져오셨다"며 북측의 누나들에게 아버지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여줬다.
북에 두고 온 아내를 만난 전규명(86) 할아버지가 "그렇게 고왔는데 왜 결혼(재혼) 안 했어"라고 말하자 아내 한음전(87) 할머니는 "왜 사진 하나 안 찍어놓고 갔어"라며 크게 흐느꼈다. 그러면서 헤어질 당시 뱃속에 있던 북측의 아들 완석(65)씨를 가리키며 "쟤 한테 아버지라고 보여줄 게 아무 것도 없었어"라고 통곡했다. 그렇게 60여년 만에 휠체어를 타고 만나게 된 노부부는 "죽어도 원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특이 이번 2차 상봉 행사에서는 북측 방문단 명단에 1972년 발생한 오대양호 납북 사건 때 행방불명됐던 정건목(64)씨가 포함됐다. 회색 정장을 입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정씨는 누나 정매(66)씨와 여동생 정향(54)씨를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가 양팔로 부여 잡고 울기 시작했다. 여동생 정향씨는 "오빠야"를 부르며 목놓아 울며 43년 동안 쌓인 한을 씻어냈다.
휠체어를 타고 뒤따르던 어머니 이복순(88) 할머니를 발견한 정씨는 곧바로 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엄마"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이어 함께 온 아내를 "며느리야,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남측 방문단의 또 다른 최고령자 이석주(98) 할아버지는 북측의 손자 리용진(41)씨가 큰소리로 "할어버지"라고 부르자 말을 잇지 못했다. 연신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다. 아들 리동욱(70)씨가 가져온 아내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60여년 만에 혈육을 마주한 이산가족들은 격한 감정을 진정시킨 뒤 헤어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준비해 온 디지털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으며 만남의 기쁨을 누렸다.
당뇨 수치가 높고 전신 동맥경화가 심해 상봉을 포기할 뻔했던 김매순(80) 할머니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북측의 조카들을 만났다. 김 할머니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내가 죽어서라도 올라가겠다고 했는데 조카들 만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며 환하게 웃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다 1972년 행방불명됐다가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북측 상봉단으로 나타난 배상만(65)씨는 아버지 배양호(92) 할아버지와 남동생 상석(60)씨, 여동생 순옥(55)씨 앞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상봉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금강산호텔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다음날을 기약할 예정이다. 상봉행사 둘째 날에는 외금강호텔 및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단체상봉이 각각 2시간씩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