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5자회동' 동안 2시간 가까이 '받아쓰기'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청와대가 대변인 배석을 거부한데다가 녹취를 허락하지도, 속기록을 주지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회동에는 청와대쪽에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이 배석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를 보고 "우리도 기록하게 해달라. 테이블에 앉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기록하겠다는데 왜 메모도 못하게 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대변인도 회동장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휴대전화로 녹취라도 하면 안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박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그런 거 하시면 안 됩니다. 청와대를 뭘로 알고 그러세요. 여기가 법정인 줄 아세요"라고 잘라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큰 그림으로 국민에게 전해주면 되지, 뭘 한자 한자 적으려 하느냐"고 덧붙였다.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조로 느껴졌다.
머쓱해진 문 대표가 "그러면 (배석한) 현기환 수석의 기록이라도 한 부 복사해 달라"고 했지만 "그것은 더더욱 안 된다"며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23일 뉴시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녹취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며 "농담같이 했지만 뼈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민감할 수 있는 자리라 나중에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말을 했니 안 했니 논란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결국 이 원내대표는 회동이 이뤄진 1시간48분 동안 메모를 해야 했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작아 자리가 좀 떨어져 있던 이 원내대표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아 곤욕을 겪었다.
청와대는 회동 전 야당이 청와대의 5자회동 제안에 대해 대통령과 여야 대표만 참석하는 3자회동을 역제안하자 "원내대표에게 법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이 대변인 배석을 요청했을 때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법안에 대한 협조를 구해야할 대상이었던 야당 원내대표는 정작 회동 내내 잘 들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받아적어야 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2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왕처럼 1시간50분 동안 대변인 배석도 없이 받아적게 했다"며 "이 원내대표가 손 아프게 계속 적었는데 물파스라도 바르십시오"라고 말했다.
추 최고위원은 "청와대에서 물파스도 안 줬나. 좀 심한 것 같다"며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접시에 스프를 담아 먹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은 웃지못할 5자회담"이라고 촌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