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해튼 뉴욕총영사관 8층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현안에 대한 송곳 질의보다는 문제점을 나열하고 해결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달라는 주문형 질의로 일관했다. 4개 공관장 보고와 휴식시간 20분을 제외하면 1시간30분여의 국감 시간이 위원장 포함 8명 의원들이 질의하기에 부족했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흡하고 '봐주기 국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뉴욕총영사관(총영사 김기환)의 경우, 뉴욕타임스 보도로 촉발된 네일업계문제와 뉴욕한인회 분규, 공관이전에 따른 소송문제 등 여러 중요 현안들이 있었으나 일부 의원들만 그것도 수박겉핥기식으로 지나갔고 최근 총영사관과 유엔대표부의 의료보험 바가지계약건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애틀랜타(총영사 김성진)와 시카고(총영사 김상일), 보스턴총영사관(총영사 엄성준)도 지난해 국정감사가 생략돼 좀더 심층적인 질의가 요구됐으나 뉴욕총영사관 위주로 진행된데다 의원들의 발언이 길어져 단답형에 그치는 등 의미있는 답변이 거의 없었다.
이날 국감에 대해 한인매체기자들은 최근 수년간 진행된 국정감사중 가장 맥빠지는 국감이었다고 꼬집었다. 한 중견기자는 "그동안 뉴욕국감을 대부분 지켜봤는데 이렇게 알맹이 없는 국감은 처음 봤다"고 허탈해 했다.
이때문에 의원들의 자료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관련 언론보도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감이 열릴 때마다 외통위 소속 의원 보좌관들로부터 각종 자료 협조를 요청받았다는 한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자료 요청을 하는 의원실이 한곳도 없어 좀 의아했다"고 전했다.
한 기자는 "답하는 총영사들이나 질문하는 의원들 공히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에 나온 것인데 일년에 한번 하는 소중한 국정감사의 기회를 너무 헛되이 쓰는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외교통상위 뉴욕국감은 16일 유엔대표부를 상대로 이틀째 일정이 진행된다.
첫 질의자인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의원은 뉴저지에 있는 위안부기림비 두 개의 관리문제와 지난 5월 발생한 크레스킬 한국유학생 교통사고 참변과 관련, 뉴욕총영사관이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분규단체가 된 뉴욕한인회에 총영사관의 개입의향, 미국학교의 한국어 교육과 SAT 채택, 한국어교사양성을 둘러싼 잡음 등을 거론하고 점검과 개선을 요구했다.
신의원은 독도 교육과 관련, "정부가 한국(한글)학교에 '독도는 우리땅' 교육을 조건으로 지원하는데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학생들에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하면 미국땅으로 오해한다.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환총영사는 "분쟁중인 뉴욕한인회 문제는 초청과 지원금 유보되고 있으며 어느 한사람의 대표성이 규명될 때까지 기다리는 상황이다. 한국어교사 잡음은 해당단체가 양성기관이 아니지만 한국어 교육을 미국 공교육에 반영시키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답변했다.
새누리당 정병국의원은 "우리 외교관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면담요청해도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동포들도 만나기 어려운데 현지인들 접촉이 가능하겠는가. 미국의 리퍼트대사 봐라 한국 국민들 칭찬이 자자하다. 이게 다 쇼(?)하는건데, 이 나라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움직이는 공관장 되는것이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공관별로 차이가 나는 공공외교 예산의 형평성문제, 총영사관 이전에 따른 공사대금 지급문제로 업체들로부터 피소된 내용에 관한 질의를 이어나갔다.
이날 국감에서는 두편의 영화가 거론돼 시선을 끌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의원은 김성진 애틀래타총영사에게 "10월 애틀랜타에서 (한인갱단을 다룬 스파이크 리 감독 영화) 'A타운보이즈'가 개봉되는데 알고 있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하자 "갱조직에 끌려가는 스토리인데 이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애틀래타가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하다고 하는데 교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유의해 달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재오의원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봤냐는 질문에 애틀랜타총영사만 봤다고 답하자 "외교부에서 보라는 소리 안했나? 지금이라도 봐라. 영사업무중에 중요한 업무중 하나다. 영사관의 간단한 실수와 무관심이 교포들이나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실감난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길'은 프랑스 공항에서 마약운반범으로 오인돼 대서양 섬의 교도소에 2년간 수감된 한국인 주부의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당시 현지대사관의 자국민 보호에 대한 소홀이 뒤늦게 도마에 올랐다.
새누리당 이주영의원은 뉴욕총영사의 기업지원활동과 지자체에서 파견된 두명의 주재관이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묻고 맥도날드 한인노인퇴출사건 관련, 한인노인들을 위해 미국의 노인복지시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의원은 뉴욕총영사관 핵심업무중 하나가 월스트리트에 네트워크 구축이라면서 충분한 의무를 다하는지 질의했다. 김기환총영사가 '재경관 중심으로 금융기관협의회 모임이 매달 있고 월가 정책보고 시장동향 파악을 하고 있다'고 답하자 "중국발 금융위기와 경기변동성, 한국의 저성장 수출경제가 한계에 봉착하는 등 국가는 건강할지 몰라도 국민들은 어려움을 겪는데 뉴욕총영사관이 관련 정보들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느냐"고 재차 묻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영사관의 업무는 교민 지원과 관할지역 한국기업 지원, 관할지역 초중고 한국어과목 채택을 통한 한국문화 보급 노력 등 크게 3가지이다. 그밖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있는데 가끔 행사초청만 하지 말고 각 공관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다든지 돌아가시기전에 초청해서 참전지역을 둘러보게 하고 한국의 발전상을 보게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김세연의원은 "지역구의 한 대형사찰에서 매년 참전용사 가족들을 초청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참전용사와 아들딸 며느리 손주까지 오는데 참전용사들이 연로한만큼 자손들에게도 신경을 써서 지속가능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일부 공관에서 영어를 못하는 주재원들이 있다는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대민서비스를 하겠는냐며 4개 공관장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냐고 일일이 묻기도 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위원장은 "4개 공관장을 한자리에 모아 질의하는 것은 국정감사의 효율성도 있지만 공관장이 모여 수평적인 정보공유를 하도록 기회제공의 목적도 있다"면서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투표율 제고를 위한 총영사관들의 계획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보충질의에서 언론인 출신 신경민의원은 네일살롱 문제에 대해 "교민들은 뉴욕타임스 보도가 조직적인 것에 의해 움직인걸로 보는데 아무리 기사를 써도 요건이 갖췄기 때문에 나가는거다. 음모나 조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큰 코를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한 한인사회의 반발은 인종차별적인 단어선택과 극소수 업체의 사례를 일반화한 '과장보도'와 한인업체가 희생양이 된 '타겟보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원혜영 의원은 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을 위해 시카고에서 추진되는 한글투표용지에 대해 김상일 시카고총영사에게 "1만명이상 청원하면 한글 투표용지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이게 최초의 사례가 되는건지, 확산시키면 굉장히 좋은 정치참여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선거에서 한글투표지의 경우, 이미 90년대말 한인들이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채택된바 있고, 뉴욕은 2002년, 뉴저지는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에선 100명이상의 한인유권자가 있는 선거구는 한글투표기계와 한국어 통역원까지 지원되고 있다.
이날 국감에서 그나마 평년작을 한 것은 정병국 의원이라는게 참관자들의 중론이었다. 정병국 의원은 보충질의에서 "미국에 세번 국정감사를 왔다. 그런데 문제제기하고 가면 나중에 감사보고에 '검토중', '논의중' 이러고 끝이다. 그러는사이에 총영사 임기끝나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뉴욕와서 문제제기한 태권도사범 부정문제, 교재노후문제도 여전히 '논의중'이다. 이건 하지 않았다는거다. 이번만큼은 결과 보고 해달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정병국의원은 보스턴총영사에게 보스턴미술관의 라마탑형사리구 부처님진신사리 반환문제를 환기하고 추가질의에서도 유일하게 입을 열었다. 정의원은 "뉴욕이 세계의 중심지이고 공공외교의 전진기지는 문화원인데 뉴욕에 문화원 부지 확보해놓고 설계도 못하고 있다. 벌써 6-7년째 끌고 있다. 건축제약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기존 부지를 매각하고 다른곳에 가는것까지 이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달라. 이번에 꼭 매듭을 지어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