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3일 전승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거행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인 '열병식'은 예상대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간)부터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거행된 열병식은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30개국 정상급 지도자와 19개국 정부 고위급 대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 등 10명의 국제·지역기구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개최됐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 역대 최대규인 1만2000여명의 병력과 500여대의 장비, 200대의 군용기를 동원했다.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의 의미를 부각하는 동시에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자국의 입지를 과시했다.
◇'전승 70주년' 숫자로 상징한 열병식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상징적인 숫자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특히 전승 70주년과 관련된 '70'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오전 10시 정각 톈안먼 광장 남쪽에서 56문의 예포가 70발의 축포를 쏘며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한족, 장족, 만주족 등 중국 56개 민족이 항일승리 70주년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다.
이어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국기게양 선언을 위해 중국 국기호위대가 121보를 걸어 국기게양대 앞에 섰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후 올해까지 121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걸음이다.
열병식이 시작되자 팔로군, 신사군, 동북항일군 등 10개의 영웅·모범부대는 총 70개의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중국군 헬리콥터 부대는 숫자 70의 모양으로 열을 맞추는 고난도의 편대비행을 선보였다.
인민해방군과 각국 군 대표단의 사열과 분열로 구성된 군사 퍼레이드 시간도 총 70분으로 잡혔다. 이는 모두 전승 7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다.
◇中, 최신예 무기 총동원
중국은 최신예 무기들을 거의 아낌 없이 공개하며 군사적 굴기의 위용도 과시했다. 이날 공개된 무기의 84%가 처음 공개되는 최신형 무기였다.
공식 예복인 중산복(인민복)을 입고 나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기념사를 마친 뒤 중국산 승용차 '훙치(紅旗)'를 개조한 차량을 타고 사열에 나섰다. 시 주석은 "동지들 수고하셨다"고 외치면서 약 20분 동안 3군을 사열했다.
시 주석의 사열이 끝나고 차를 탄 채 등장한 항일전쟁 참전노병 대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군사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이들은 평균 90세의 참전 노병 등으로 구성됐으며 중국 공산당 뿐만 아니라 대만 국적의 국민당 노병들도 참가해 의미를 더했다.
의장대 등 도보대열과 노병대열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중국의 최신 무기들이 대중 앞에 선을 보였다. 지대함 미사일 둥펑-21D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둥펑 31-A, 조기경보기 쿵징-2000, 전투기 젠-10 등이 공개됐다.
중국 인민해방군 뿐만 아니라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등 11개국에서 파견한 약 1000명 규모의 사열부대도 퍼레이드에 함께 했다. 열병식 내내 1000여명으로 구성된 중국 연합군악대는 군가를 쉬지 않고 연주했다.
◇복 상징 노란색 상의 입은 朴대통령, 상석에서 참관…北 최룡해는 끝자리
박 대통령은 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상의를 입고 열병식에 참석했다. 중국에서 금색이 복(福)을 상징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톈안먼 성루에 오른 뒤 시 주석의 오른편 상석에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시 주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 박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반 총장 순으로 앉았다. 시 주석 왼쪽에는 중국 측 인사들이 자리했다.
반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신해 행사에 나와 관심을 모았던 최룡해 조선노동당 비서는 박 대통령과 같은 맨 앞 줄이었지만 시 주석으로부터 가장 오른쪽 끝부분에 앉아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상석에 앉은 박 대통령과 대비되는 말석에 앉은 셈이다. 비록 김 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인사이기는 하지만 한·중 밀월관계에 비해 급격히 소원해진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을 지켜보던 중 선글라스를 착용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 쪽에서 차양이 없고 햇볕이 강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라고 안내했다"고 전했다. 지독한 대기오염으로 유명한 베이징의 이날 하늘은 이례적으로 맑고 푸른 빛이었다.
◇시 주석 "군 30만명 감축"…평화의 비둘기로 마무리
이날 열병식은 중국의 군사굴기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자리였지만 공교롭게도 시 주석은 "인민해방군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군 사열이 시작되기 전 발표한 기념사에서 이같이 밝히고 "중국인은 평화를 사랑한다. 앞으로 중국이 아무리 강해진다 하더라도 중국은 결코 패권주의나 팽창주의를 모색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 중국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나라로 하여금 겪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상군 중심으로 된 현 인민해방군의 현대화를 앞당겨 첨단무기의 해·공군 중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비둘기와 풍선을 날려보내며 열병식을 마쳤다. 최첨단 무기전시장을 방불케 한 열병식에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로 마침표를 찍은 다소 역설적인 장면이었다.
한편 중국 정부가 전승절 행사를 위해 이날을 임시휴무일로 지정하자 톈안먼 광장에는 1만9000여명의 중국인들이 운집해 열병식을 지켜봤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은 열병식을 전후해 3시간 동안 주변 상공지역의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