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카포네 트릴로지' 김태형 연출 "새로운 형식, 몰입감 극대화"

공연 연출가 김태형(38)의 작품은 배우뿐 아니라 무대 전체가 보인다. 공학도(카이스트 중퇴) 출신인 그는 무대 운용의 공학을 안다. 극의 정서, 인물들의 심리가 무대에 투영되고 무대의 분위기가 극의 맥락, 배우들의 캐릭터에 반영된다.

연극 '모범생들'과 '히스토리 보이즈', 뮤지컬 '로기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그의 장점이 발휘돼왔다.

한국 초연을 앞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작 제이미 윌크스 작)는 그래서 김태형 연출에게 제격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함께 무대가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1923·1934·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로 그린다.

이 시기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일대를 주름잡던 때다. 마피아로 상징되는 힘의 논리가 정의와 도덕을 누르고 횡횡하던 시대다. 코미디 '로키', 서스펜스 '루시퍼', 하드보일드 '빈디치'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은 그 당시의 암울한 공기와 만나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세 가지 에피소드는 독립적인 형태로 공연된다. 한편 편 당 러닝타임이 70분 안팎으로 같은 공간에서 날마다 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장인 200석 규모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좌석 수의 절반을 줄여 100석으로 만들었다. 배우들은 매번 관객 바로 코 앞에서 연기해야 한다. 관객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불과 50㎝밖에 안된다. 객석은 50석 씩 서로 마주보게 배치돼 있다. 양쪽 객석과 객석 사이의 거리는 3m20㎝ 정도다. 관객들도 호텔 방문을 열 듯이 공연장 안에 들어오게 되는데 호텔 방문과 창문의 거리는 7m다. 실제 렉싱턴 호텔 방의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실감할 수 있다.

이석준, 김종태, 박은석, 윤나무, 김지현, 정연 등 출연 배우들의 이름값과 김태형 연출에 대한 믿음에 대한 이유도 크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높다. 각 회차는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14일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인 김태형 연출을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관객들과 업계의 기대가 커서 부담도 크지 않나요?

 "부담스워 하면 공연을 못하죠(웃음). 기대를 많이 해주시니 고맙죠. 공연 자체의 콘셉트도 신선하지만 참여하는 배우들도 기존에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저도 기대가 크죠. 세 공연의 스타일이 달라서 배우들이 다른 집중력을 보여줄 것 같아요."

-'카포네 트릴로지'는 맨 처음에 어떻게 접했나요?

 "작년 에든버러 갔을 때 오리지널 팀의 공연을 우연히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한국에서 이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공연제작사(아이엠컬처)에 제안을 드렸어요.(김태형 연출은 이 제작의 전작 뮤지컬 '로기수' 연출로 호평 받았다.)"

-원작에 없는 빨간 풍선을 매 에피소드마다 넣어서 세 작품의 통일성을 꾀한 것은 '신의 한수'에요.

 "물론 원작 자체가 흥미롭긴 해요. 그런데 (각색자인) 지이선 작가와 함께 이 작품을 2015년 대한민국에서 공연하려고 할 때 무슨 이야기를 더해야 할까 고민했죠. 우선 빨간풍선으로 대표되는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삶,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 등. 등장인물들의 삶을 지배하는 마피아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상징이죠. 빨간 풍선이 중요한 오브제인 만큼 그 풍선이 등장할 때마다 흐르는 테마곡도 만들었죠."

-풍선을 빨간색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노란색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다른 상징이 될 것 같았어요. 풍선하면 우리가 자연스레 빨간색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희극을 담당하는 광대의 코도 빨간색인데 그의 눈가에는 슬픔을 상징하는 눈물 한 방울이 붙어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 빨간색으로 정했죠."

-한번에 세 작품을 준비하는 것은 배우들뿐 아니라 연출가에게도 정말 힘든 일입니다.

 "3시간짜리 공연 한편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웃음)."

-그럼에도 흥미롭고 보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자체가 재미죠. 특히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쏟아낼 수 있어서 재미가 있어요. '로키'는 안무와 노래가, '빈디치'와 '루시퍼'는 격투 신이 그 짧은 러닝타임에도 들어가거든요."

-'로키'는 인기 절정의 쇼걸 '롤라 킨'의 결혼식 전날 그녀를 둘러싸고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끝없는 살인을 다룬 코미디, '루시퍼'는 조직의 2인자인 '닉 니티'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파국을 맞이하는 서스펜스, '빈디치'는 사랑하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상사 '두스'에게 화려한 복수를 계획하는 경찰 빈디치의 이야기를 그린 하드보일드입니다.

 "로키는 슬랩스틱 코미디 요소가 있지만 올라 킨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요. 쇼걸이 아픈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남기 위한 상황들이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서글픈 요소도 있죠. '루시퍼'는 조직의 일과 아내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남자가 닉 니티가 주인공인데 비록 잔혹한 마피아지만 명예퇴직 당하기 직전 아버지처럼 그리고자 했어요. 회사원의 페이소스가 묻어나올 것 같아요.'빈디치'는 폭력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가 긴장감과 함께 폭력에 대한 반성적인 요소가 들어가죠. 내레이션이 들어가는데 그런 부분은 영화 '씬 시티'의 분위기를 참조했죠."

-무대도 참 흥미로워요. 배우 김지현 씨는 작두를 타는 것 같다고 하던데요(웃음)?

 "공연 내내 연기가 관객에게 오픈되기 때문에 배우들은 매 장면 살얼음을 걷는 듯 긴장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 부분이 기존 대극장 공연에서는 전달되지 못한 섬세한 에너지를 관객에게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습실에서 보던 만큼 무대에서 에너지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무래도 무대와 객석은 그 거리 만큼 심리적 거리를 느낄 수 있죠. 이번에는 연습실에서 느낀 공연의 질감 자체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카포네 트릴로지'가 배우, 연출, 관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날 것의 매력을 느낄 수 있죠. 새로운 공연장 형태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배우들이 기존에 자신이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도전적이죠. 그런데 공간이 특별하기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공연보다도 몰입감을 주기 위한 장치에요. 모든 곳이 닫혀 빠져나갈 수 없는 호텔방은 마피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그 부분이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모피아' '금피아' 등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닌 사람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 때문에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지만 자신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2007년 연극 '오월엔 결혼할거야' 이후 다양한 장르를 선택해왔는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한데 우선 저에게 흥미가 있어야 하죠(웃음). 기본적으로는 시스템과 거기에 충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게 좋아요. '모범생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족오락관' 다 그런 종류의 작품이었죠. '카포네 트릴로지'와 관객참여RPG(Role Playing Game)형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처럼 색다른 공간에서 하는 작품들도 좋고요."

-공학도 출신이라서 무대 공학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가?

 "학교 다닐 때(김태형 연출은 카이스트를 중퇴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 세 작품을 연출했는데 그 때 무대를 거꾸로 썼어요. 두 작품은 블랙 박스형 극장에서 계단 등이 있는 객석 쪽 구조물을 무대로 사용했고, 한 작품은 무대의 뒷면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 그런 형식이었죠. 제 작품을 보시면 무대가 움직이면서 그 무대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스태프들에게 만약 2시간짜리 공연이면 단 1분 만이라도 좋으니 그 순간은 배우가 아니라 무대, 의상, 조명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만들자고 하죠."

-최근 고등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하셨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연출님이 과학고 재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었는데 '제가 만든 연극을 보는 관객들 반응이 인상적이었어요. 왜냐면 그간 (공부를 잘 하니) 다른 걸 잘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연극을 통해서 제 예술적 활동을 인정받은 거죠'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남들에게 인정 받는 것만으로 이 작업에 대해 만족할 수 없죠. 물론 인정 받고 남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일을 하는데 한계가 있죠.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계속 생겨요.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거죠. (춤에 빠진 북한군 포로소년이 주인공이었던) 뮤지컬 '로기수'도 그렇고 '카포네 트릴로지'도 그렇고 다 도전이었어요. 앞으로도 도전을 해나가면서 비판 받을 부분은 받고 칭찬 받을 부분은 칭찬 들으면서 재미와 흥미로 연출을 해내갈 수 있었으면 해요."

김태형 연출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사 아이엠컬처가 내년에 선보이려고 준비 중인 '벙커 트릴로지'의 국내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도 맡는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주최한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내한공연으로 초연했던 '벙커 트릴로지'는 '카포네 트릴로지'의 제작인 제스로 컴튼 컴퍼니의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등을 배경으로 고전 소설과 그리스 신화 등을 엮은 세 작품을 묶은 공연이다. 역시 한정된 공간의 무대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태형 연출에게 잘 어울린다. "하게 되면 세계 1차 대전이 아닌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옮겨올까 생각 중이에요." 새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김태형 연출의 눈이 어느새 빛났다. '카포네 트릴로지'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