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윤선·허윤정, 절정의 합주…국립극장 '여우락' 화려한 개막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이 거문고의 줄을 한번 튕기자 1일 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내 KB청소년하늘극장에 숲이 만들어졌다. 재즈보컬 나윤선의 목소리는 새가 돼 그 숲을 날아다녔다. 

허윤정이 짓는 거문고의 그 묵직한 울림은 신비로웠고, 나윤선의 스캣은 재즈보컬의 기교라기보다 자연의 소리에 가까웠다. 

약 5분 간 두 거장의 완벽한 합주가 이뤄졌는데 더 놀라웠던 건 즉흥이었다는 거다. 국악과 재즈는 장르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바로 교감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여우락 페스티벌'(여기, 우리 음樂(악)이 있다)의 개막 공연 '디렉터스 스테이지 - 여우락 콜렉티브'는 올해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역사였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과 올해의 아티스트로 만난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나윤선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단독 콘서트에서 여러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으나 단 둘이서 공식적으로 공연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즉흥곡에 이어 들려준 '마이 바이(My Bye)'는 나윤선이 만든 발라드인데, 거문고 반주로만 들으니 애달픔이 배가 됐다. 

두 사람이서 함께 들려준 마지막 곡은 냇 킹 콜의 '칼립소 블루스'. 하늘에 있는 냇 킹 콜이 깜짝 놀랄만큼 변주가 인상적이었다. 

잔잔하게 시작한 허윤정의 거문고 연주와 나윤선의 보컬은 이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강렬하게 변하더니 '헤비메탈' 못지 않은 사운드를 내뿜었다. 거문고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이런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윤선이 연주나 보컬을 바로 녹음해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치인 '루프 페달'을 사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겹겹이 쌓아 들려줄 때는 몽환적이기도 했다. 

나윤선과 허윤정의 합은 그런데 이날 '여우락 콜렉티브'의 서막이었다. 

김정희(장구), 강권순(정가), 김용하(해금), 이아람(대금), 오정수(기타), 이원술(베이스), 신현필(색소폰), 신동진(드럼)이 가세한 본 공연에서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음악은 내내 밀물처럼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9세기 후반 탄생한 기악 독주곡으로 '흩어진 가락'을 뜻하는 산조가 주제였는데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의 연주가 뒤섞이면서 어디에도 없는 기악 합주곡인 '시나위'가 탄생했다.

이번 공연은 음양오행이라는 우주의 생성, 순환 원리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전통 음악을 금(金)·수(水)·목(木)·화(火)·토(土)의 특성을 바탕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화(火)가 화룡점정이었는데 장구와 드럼을 기반으로 꽹과리, 징, 바라 등 쇠로 된 타악기가 색소폰 등의 금관악기와 만나 공연장 내 수은주를 가파르게 상승시켰다. 사운드가 용광로에서 단련되는 듯 강렬했는데, 악기마다 박자들이 엇갈리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후 모든 악기들이 즉흥 합주인 시나위를 선사했는데 허윤정의 거문고가 뒤에서 모든 걸 감싸듯 버티는 가운데 악기마다 서로 맞물리면서 내는 질감은 국악기가 양악기와 만나 낼 수 있는 사운드의 최대치였다. 

약 95분간의 공연이 끝나자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사운드에 환희가 찾아왔다. 그렇다고 낯선 음악으로만 점철됐느냐, 그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도 그 신선함에 누구나 귀를 쫑긋 세운 채 호기심을 가지고 들을 만한, 충분한 대중성도 있었다. 

재즈는 물론 전통 가요, 성악 등 다양한 보컬이 혼재된 나윤선의 '정선아리랑'이 앙코르 무대를 장식했다. 

사실상 국내 유일의 우리 음악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의 올해 돛을 이처럼 성대하고 높게 달았으니 배는 잘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순항할 일만 남았다. 26일까지 국립극장. 나윤선, 허윤정, 국악 그룹 '불세출', 시인 고은, 국악 앙상블 '숨', 타악 연주자 스테판 에두아르 등이 나온다. 전석 3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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