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정웅인 "웃기려고 작정하면 관객 달아나"

재미있는 상황 쌓아가야 저절로 웃음 나와

배우 정웅인(44)이 "코미디는 절실함"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여유 있는 삶 속에서 코미디는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킬 박사도 절실해요. 내일이 발표회인데, 성과를 거둔 건 하나 없고. 연구를 성공은 시켜야하니 무리를 하면서 이야기 균형감이 깨지죠. 그러면서 재미가 생기는 거죠(웃음)."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정웅인이 말하는 지킬은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속 지킬.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로도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다.

인간의 '선'과 '악', 두 개의 인격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실패한 지킬 박사는 당장 내일로 다가온 연구 발표회에서 자신의 악한 인격 '하이드'를 연기할 무명 배우 '빅터'를 고용한다.

모두가 깜빡 속을만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리허설에 돌입한 두 사람 앞에 지킬 박사의 약혼녀 '이브 댄버스'가 찾아오면서 잇따른 해프닝이 벌어진다. 지킬의 '절실함'이 자연스레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미타니 고키의 작품으로 지난해 일본에서 초연했고, 현재 한국 무대에 처음 오르고 있다.

 '웃음의 대학'에도 출연한 정웅인은 미타니 고키의 팬을 자처했다. "대본 자체가 상황을 잘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웃길 상황이 초반부터 계속 쌓이면서 중후반부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상황 자체가 웃음을 주죠. 말로만, 행동으로만 웃기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정웅인 식 코미디와 맞닿는 부분이다. 시트콤 '세친구'(2000)와 영화 '두사부일체'(2001)·'돈 텔 파파'(2004) 등에서 변칙적인 리듬감을 과시한 정웅인이 주는 웃음의 포인트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수긍이 되는 '이유 있는' 코미디였다. "웃기려고 작정하면 오히려 관객이 도망갈 수 있어요."

그래서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무대에 오른지 약 한달, 관객이 웃는 포인트를 알게 됐음에도 그 부분을 질질 끌지 않고 초반의 리듬을 가져가고 있다. "장기간 연극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초반의 러닝타임을 철저하게 지키는 거예요. 지금도 공연시간 1시간 30분은 항상 지킵니다. 웃음 포인트를 안다고 질질 끌다가는 오히려 전체적인 리듬을 깨트릴 수 있어요."

덕분에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연극 예매율 1~2위를 다투고 있을 만큼 순항하고 있다. 정웅인을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 프롤로그와 '브링 온 더 맨' 등 종종 흐르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넘버 등 패러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불황인) 요즘 연극 시장에서 이렇게 큰 극장(동숭아트센터 동숭홀 공연으로 약 450석)공연 자체가 축복이죠. 관객들이 연예인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비싼 돈을 내고 관람하지 않거든요.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기분이 좋죠."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코믹 이미지가 강했던 정웅인은 최근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는 악역 전문 배우로 거듭났다. 사실상 본격적인 첫 악역을 맡았던 영화 '전설의 주먹'(2012)'을 시작으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와 '끝없는 사랑'(2014)에 이어 현재 출연 중인 MBC TV 월화 사극드마라 '화정' 등으로 호평 받고 있다. 특히 '화정'에서는 '광해'를 연기하는 차승원과 자주 맞붙는 '이이첨'을 맡아 눈빛을 번뜩이고 있다.

 "참 인간이 간사한 것 같아요(웃음). 코미디 이미지가 강해서 악역을 맡았더니, 악역 이미지만 너무 굳어질까봐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처럼 코믹한 이미지도 보여드리고 싶고. 매번 사람이 비슷한 것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같은 면이라도 짜장면, 파스타를 번갈아 먹듯이 다른 면을 계속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죠. 배우가 일주일에 두 종류의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매력이에요."

최근 '화정'에서 역할('이덕형')의 소임이 끝나 퇴장한 배우 이성민은 자신과 적대 관계였던 이이첨을 연기한 정웅인과 함께 "코미디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저에 대해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하신 것 같아요. 차승원 씨와 말을 잘 받아치는 걸 유심히 보시더라고요. 저도 성민 형님과 코미디 연기를 해보고 싶네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웅인의 코미디 연기의 또 다른 강점 중 하나는 행동. 재치 있는 말 뿐만 아니라 그 말과 상황이 몸 연기에도 녹아들어간다. 그는 연극 무대 연기는 "언행일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손동작 연기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배우의 감정선이 제일 잘 보이는 것이 얼굴 다음에 손이에요. 어색해서 손을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연기도 어색해집니다. 지킬의 감정 처리 역시 시선과 함께 손, 발 다 써요. 연극 무대에서 그런 것을 연습하다보면,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손 연기가 자연스러워지죠. 특히 시대극, 사극에서 유용하죠. 현대극에서는 손을 비교적 자유롭게 놓아둬도 괜찮지만, 사극에서 손으로 뒤통수를 긁는다든지의 행동을 하는 순간, 연기가 부자연스러워지죠."

그래서 젊은 배우들이 연극에 자주 출연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저희들도 이순재, 신구, 정동환 선생님이 인터뷰 도중에 '무대 위에 틈나는 대로 서야 한다'고 한 말씀을 읽고서 연극 출연을 계속 생각해왔으니까요. 제 말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지 모르지만 저도 연극 무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서울예대 연극과 89학번인 정웅인에게 대학로는 고향이다. 1996년 SBS TV 코믹드라마 '천일야화'로 TV에 데뷔하기 전 동숭아트센터의 왼쪽 길에 자리를 잡은 작은 극단에서 연극 일을 했다. "(지금이야 큰 극장도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국립극장과 동숭아트홀이 최고였죠. 그 때 작은 극장에서 일 하면서 저 큰 동숭아트센터에서 언제 공연을 해보나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지금도 연극 사랑은 지속된다. 최근 배우 한명구가 출연한 연극 '레드'를 보고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을 다룬 2인극이다. 미국 작가 존 로건이 로스코가 실제 말했던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다.

 "로스코가 참 독특한 작가잖아요. 자신의 길만 보는. (재연인) '민들레 바람되어' '웃음의 대학'을 공연한 뒤에는 초연을 하고 싶었어요. '그와 그녀의 목요일'도 초연이었고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도 초연이죠. '레드'는 그런데 세 번째 공연인데 한번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50대 때 한번 로스코를 연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거친 에너지를 풍길 수 있는) 남자 2인극은 언제나 환영이고요(웃음)."

눈매가 날카로워 보통 첫 대면에 인상이 좋지 않다는 평을 듣는 정웅인은 하지만 웃는 순간 이미지가 확 바뀐다. 그보다 더 좋은 동료, 좋은 형, 좋은 아빠는 없을 것 같은 인상이다. 악역과 코미디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이중적인 이미지, 이중적인 모습을 굉장히 좋아해요.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죠.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는 하이드로 변신 못하지만 현실 속 지금의 정웅인은 일주일마다 자유자재로 양면성을 띤다. 진짜 '지킬 & 하이드'는 대학로에 있었다.

7월5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또 다른 지킬은 배우 최원영. 빅터 이시훈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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