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진을 카메라로 찍는 줄 아는데 몸으로 찍는 것이다.”(강홍구 작가)
지난 19일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부문 기획전시 ‘우리가 알던 도시-강홍구, 박진영 사진전’의 강홍구 작가(59)는 건장한 체구에 호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강 작가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몸으로 체험하고, 그게 뷰파인드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그 게 사진가가 현장에 가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강 작가는 10년 넘게 도시 재개발 현장의 풍경을 포착해왔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건 이후 그 재앙의 현장에 직접 뛰어든 박진영 작가(43)는 ‘타버린 책상’을 찍을 당시를 떠올렸다.
박 작가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출입제한이 해제돼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 4시에 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며 “해가 뜨기까지 30분간 그 폐허의 현장에 앉아있는데 이건 정말 군대에서 구타당한 경험보다 더 무서웠다”고 표현했다.
“다시는 안 찍는다고 생각하다가도 타버린 책상에 햇빛이 떨어지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그 공포의 30분이 희석됐다.”
‘우리가 알던 도시’ 사진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에서 상실되는 것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지는 것들을 사진으로 포착해 도시의 속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강홍구와 박진영은 오랫동안 도시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로 재개발과 재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오늘의 도시가 겪고 있는 상실과 불안의 정서를 다룬다.
서양화를 전공한 강홍구는 디지털 합성 사진을 주된 매체로 삼은 반면 사진을 전공한 박진영은 다큐멘터리 사진 전통에 충실한 아날로그 사진을 주로 찍어왔다. 두 작가의 작업방식은 상당한 대조를 이루나 남겨진 잔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관계로 두 작가의 작업은 녹록치 않다. 당장 박진영은 방사능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진영은 “솔직히 좀 겁난다”면서도 “좀 더 할 것 같다”고 했다.
박진영이 ‘작가적 욕심’을 부리는 데는 개인적 이유가 있다. 박진영은 지난 2008년 옻칠을 배우러 한국에 온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 한동안 한국에서 살다 일본으로 넘어간 그는 낯선 곳에서 사진은 안 찍고 술만 마셨다.
삶의 현장에 쑥 들어가 피사체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작업하던 그로서 말이 안 통하니 사진 자체를 찍을 수 없었던 것. 할 수 없이 아무런 의미없는 깡통이나 찍을 때였다. 그때 지진이 일어났다.
박진영 작가는 “비극적 재난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 그렇지만 그 사건이 제게 기회가 됐다”며 “제 사진작업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강홍구 작가는 이제 재개발 현장을 떠나 다른 주제를 찾아볼 생각이다.
강 작가는 “10여 년 찍다보니 이제 재개발을 제 의도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받아들이더라”며 "경제적으로 말이다"라고 했다.
“이제 힘도 부친다. 철거자들과 너무 많이 부딪혔다. 다른 이유는 재개발 사진을 찍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이제 그들에게 넘겨주고 나는 빠질 때가 됐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웃음)”
요즘은 회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틈틈이 드로잉도 한다는 그는 “딱 하나 설치미술은 안할 것 같다”고 했다.
“현장의 설치물이 너무 강력해서 미술관에 해놓은 설치를 보면 불쌍해 보인다. 현실에 설치물이 너무 많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강홍구의 작업에 대해 “재개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현실과 허구, 비판과 유희,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말한다.
“강홍구 특유의 균형감각은 대상에 대한 거리 두기와 관련된다. 무력하지만 무심할 수 없는, 그래서 언제나 현장의 주변을 배회하게 되는 예술가의 복잡한 심경이 여기에 반영된다.”
박진영에 대해서는 “사건의 중심부로 뛰어들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두고 그 주변부를 탐색하듯 사진을 촬영한다”고 설명한다.
방사능이 유입되면서 공포와 불안의 상징이 된 바다, 오후 두 시의 텅 빈 거리, 화재로 불타버린 학교 교실에 남겨진 물건 등의 사진은 현재 진행 중인 재난의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이밖에 두 작가가 폐허의 현장에서 주운 주인 잃은 물건들은 그들이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닌 작가라는 점을 엿보게 한다.
한편 ‘우리가 알던 도시 - 강홍구, 박진영 사진전’은 오는 10월 1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특히 6월 건축전문 전시실에서 개막하는 ‘아키토피아의 실험’(6.30-9.27)전과 도시라는 주제를 공유하며 연계 기획됐다.
이사빈 학예연구사는 “이상향으로서의 도시 건설을 꿈꾸는 건축가들의 낙관적 태도와 도시의 현실에 대해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가들의 비판적 시선을 대조하면서, 건축과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비교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