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흥순(46) 영화감독 겸 미술작가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해 화제다.
임 작가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주로 35살 미만의 작가들에게 주어지던 이 상의 전례를 뒤집고 46살의 임 작가가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 전시에 해당하는 국제전의 총감독을 맡게 된 오쿠이 엔위저(51)를 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엔위저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예술의 미학적 가치보다 정치사회적 역할이나 현실참여를 중시해온 큐레이터다. 임흥순은 예술을 사회변화의 도구로 생각하는 작가다.
백기영 전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겸 큐레이터는 “엔위저가 2002년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 총감독을 하면서 아프리카 작가를 대거 발굴했다면 이번에는 아시아로 관심을 확장했다”며 “아시아 국가의 산업화 이후 다양한 문제들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기획한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혁신적인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안소연 미술평론가는 “엔위저가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된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표현했다. 안 미술평론가는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예술가의 소임은 무엇인가라는 화두 속에서 비서구권 예술을 주목해온 엔위저가 총감독으로 발탁됐다”며 “그런 엔위저가 임흥순의 작품에 주목한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취향이 아닌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임흥순 작가는 한국 미술계로 보면 대안공간 1세대 작가다. 국내에서는 1999년을 기점으로 루프, 사루비아 등 기존 미술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미술 단체가 등장해 대안공간시대가 열렸다.
경원대 회화과 석사 출신인 임 작가는 2000년대 초 ‘믹스라이스’라는 프로젝트 미술 단체를 결성해 이주노동자 문제를 영상으로 풀어냈다. 또 부모가 노동자였던 자신의 개인사를 사진, 영상, 설치 등으로 시각화했는데,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다큐멘터리 ‘내 사랑 지하’는 30세까지 반 지하에서 살았던 자신의 가족사가 바탕이 됐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비념’(2012)은 한 할머니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4.3사건과 현재의 강정마을 문제를 엮어 제주 현대사를 조망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 ‘위로공단’은 편견과 학대,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고군분투해온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심사위원단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적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백기영 큐레이터는 “보통 비엔날레 초청 작가라고 하면 해외유학파를 떠올리기 쉽다”며 “하지만 임 작가는 늘 노동현장에 발을 붙인 채 정치사회 문제를 예술의 의제로 삼고, 그것을 작업으로 실천한 작가로서 그의 수상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이어 “임 작가가 주목받는다는 것은 현대미술사적으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 다시 중요한 의제로 부각됐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안소연 미술평론가는 “소외계층에 속한 개개인을 통해 아래서부터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는 임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것이 단지 개인의 문제라거나 극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다수가 공감하는, 우리에게 당면한 오늘의 역사라는 점에서 힘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윤동희 세종대 회회과 겸임교수는 “미술계 밖을 벗어나서 미술계의 인정을 받은 경우”라며 “임 작가는 미술계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주관대로 작업을 해온 한 예술가의 축적된 시간이 인정받은 사례”라고 말했다.
최근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북노마드 미술학교 a.school에서 ‘더 코코넛 걸 展’을 열고 있는 차혜림 작가는 임 작가의 수상소식을 듣고 “작가의 삶과 예술작업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임 작가의 경우 삶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