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슬기, 세번째 '지젤'역 … "그래도 긴장돼요"

같은 작품을 또 봐야 하는 이유는 수십가지다. 배우 또는 무용수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도 그 중 하나다. 낭만 발레 '지젤' 출연을 앞두고 있는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강수진)의 수석 무용수 박슬기(29)는 대표적인 보기다.

2008년 '지젤'에서 페전트 파드되(소작농 2인무)로 발레 관계자와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2012년 '지젤'의 타이틀롤을 꿰찬 뒤 세번째 이 역을 맡게 됐다. 준단원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기에 '지젤'에서 군무, 솔리스트 등 맡아 보지 않을 역이 없을 정도다.

 "'지젤'은 출연할 때마다 긴장된다. 특히 지젤 역이 세 번째이다 보니 부담감이 크다. 지난 번보다 더 나은 점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지젤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다."

 '지젤'은 '돈키호테' 등 주로 강한 안무로 인식된 박슬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그녀가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안무에도 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조기졸업한 박슬기는 "대학교 때도 주로 강한 역을 맡아왔다. 그래서 지젤을 처음 맡았을 때 걱정이 많았는데 하다 보니 연기가 의외로 편하더라"며 쑥스러워했다.

지젤의 감정은 1막과 2막에서 극적으로 대비된다. 1막에서는 막 사랑에 빠진 시골처녀인만큼 풋풋하고 싱그러운 감성을 표현해야한다. 하지만 사랑했던 귀족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2막에서는 숲 속을 지나가는 남자들을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드는 윌리(결혼 전에 죽은 처녀들의 영혼)를 소화해야 한다.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변해 표현하기 어렵지만 결국 그 장면 안에 빠져드는 것이 답이더라."

작품은 결국 사랑의 숭고함을 이야기한다. 지젤의 무덤을 찾아왔다가 윌리들의 포로가 된 알브레히트는 지젤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다. 박슬기는 처음에는 지젤의 그 숭고한 사랑이 답답하기도 해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웃었다. 하지만 "얼마나 그를 사랑했으면, 죽어서도 구해줬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감정을 알겠더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역시 알브레히트를 안은 뒤 지젤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매번 뭉클하더라."

발레리나 김지영(37)과 이은원(24)이 박슬기와 함께 지젤을 나눠 연기한다. "지영 언니야 노련하시니 지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은원이는 나이도 어린데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특히 1막에서 지젤을 연기하는데 싱그럽더라."

국립발레단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박슬기 지젤의 가장 큰 장점은 표현력. 이번 무대에서는 더 나아가 기술적으로 한층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별렀다. "2막에서 윌리를 표현할 때 머리에 사과를 얹고 걷는 것처럼 높낮이 없이 스텝을 밟아야 한다. 정말 발이 보이지 않게 귀신같이 움직여야 한다. 몽환적인 부분이지만 동시에 현실감을 줘야 하는 부분이라 한창 연습 중"이라고 했다.

벌써 발레를 한 지 20년 남짓. 뒤 돌아보지 않고 매순간 긍정적으로 산다는 박슬기는 "지금까지 발레가 싫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수석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만큼 "(국립발레단에) 어떻게 기여할지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아직 "한 없이 부족하다. 이 자리에 올라와도 되나 싶고. 운 좋게 된만큼 더 노력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레리나의 활동 폭이 넓어진만큼 자신 역시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팔색조 같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겸손함이 바탕이 된 노력과 도전으로 무장한 그녀가 또 다른 작품에서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알브레히트 김현웅, 이동훈, 이영철. 25~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휘 주디스 얀, 연주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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