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토종 사모펀드(PEF)인 '보고펀드'가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지자 보고펀드에 투자한 은행 등 기관투자자의 손실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펀드는 지난 2007년 KTB프라이빗에쿼티(PE)와 손잡고 LG실트론 지분 49%(보고펀드 29.4%, KTB PE 19.6%)를 사들였지만, LG실트론이 상장에 실패하면서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2250억원을 빌렸다. 우리은행이 950억원, 하나은행이 400억원을 빌려줬고, 8개 캐피탈사가 나머지 900억원을 댔다. 채권단은 이 중 400억원에 대해 기한이익상실(신용위험이 높아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행위)을 통보했다.
지난 29일 열린 채권단 회의에서는 보고펀드가 가진 LG실트론 지분 29.4%를 팔아버리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내달 중 매각주관사를 선정하고 실사를 통해 자산가치를 평가할 방침이다.
문제는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느냐는 것이다. 채권단은 LG실트론의 자산가치가 미미한 만큼 회사가 가진 기술 경쟁력과 모회사의 '이름 값'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LG실트론의 실적이 부진한 탓에 업황이 개선될 때 까지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LG실트론은 태양광 사업 및 발광다이오드(LED)용 사파이어 잉곳 사업에서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해 166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매각이 난항을 겪을 경우 손실은 채권단이 떠안게 된다. 채권단은 대출해준 돈에서 비는 만큼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이 액수는 실사 이후 구체적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LG실트론이 보유하고 있는 고유 기술이 있고 대기업인 LG의 계열사인 만큼 2000억원 가량을 회수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펀드와 LG그룹의 소송도 변수다. 최근 보고펀드는 LG실트론의 상장절차가 중단되자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LG그룹과 회장 및 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고펀드는 "지난 2011년 7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지시로 LG실트론의 상장 추진이 중단돼 투자금 회수 기회를 상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LG가 주주 간 계약서상의 의무를 위반하고 LG실트론의 기업공개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반면 LG그룹은 "보고펀드가 LG실트론의 지분을 기업가치보다 현저히 높게 매입해 달라며 ㈜LG 경영진의 배임을 지속적으로 강요, 압박하고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 및 연장에 실패한 데 따른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며 '배임 강요' 및 '명예 훼손' 혐의로 맞대응에 나섰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보고펀드와 LG그룹 간 법정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데 LG가 어느 정도 손실을 보전하느냐에 따라 변수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1650억원(19.6%) 규모의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한 KTB프라이빗에쿼티(PE) 측은 "투자한 펀드에 LG실트론만 있는 게 아니라 우량 회사도 있기 때문에 인수금융 이자를 갚아나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KTB PE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LG실트론의 경영 환경이 살아나는 것을 비롯해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상황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일단은 현재 진행 중인 보고펀드와 LG의 소송 결과에 따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모펀드의 '인수금융 채무불이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PEF 출자를 보류하는 등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다"면서 "연기금이나 금융권이 수익을 내려면 사모펀드 시장에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잠시 위축된다고 해도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