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송지수] 조직 해체 위기에 봉착했던 금융당국이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대통령실은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 당정대 협의회를 개최, 금융위원회 정책 감독 기능 분리 및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을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제 위기 극복에 금융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금융 관련 정부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하게 방치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정대 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조직 개편이 소모적 정쟁과 국론 분열의 소재가 돼선 안 된다"며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려 했던 금융위 정책 감독 기능 분리와 금소원 신설 등을 정부조직 개편에 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 금융당국 개편을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상정해 처리할 방침이었다. 이같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금융위는 18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기획재정부에서 분리된 재정경제부에 국내금융정책 기능을 이관할 예정이었다. 또 금융감독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금융감독과 소비자보호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당정은 정부조직법이 이날 처리된다 해도 후속입법인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이 야권 반대로 최소 180일간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에 계류돼 금융권에 극심한 혼란이 일 것을 우려했다. 정부조직법이 야권의 반대 속에 강행 처리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발표 직후 조직 개편을 위해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던 작업들을 전면 중단했다. 조직 분리를 위한 내·외부 조율 등 관련 작업들이 모두 백지화됐다. 대신 금융감독 체계상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성·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구상에 나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뉴욕 순방 동행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인 만큼 특별한 메시지를 내지는 않았다.
한 금융위 고위 간부는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고심이 컸을 것으로 본다"이라며 "금융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금융 관련 정부 조직을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 차분히 할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조직을 쪼개고 기재부로 이관할 부처와 인원을 정하는 일이 마치 이혼수속을 밟는 것처럼 힘들었다"며 "앞으로 금융당국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전날 17년 만에 처음으로 장외 야간 집회에 나섰던 금감원 직원들도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 등 직원들은 지난 24일 국회 앞 도로에 집결, 쏟아지는 빗속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경찰 추산 1500명, 자체추산 1800명으로 금감원 직원 전체(2600명)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을 4개로 쪼개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며 "백지화를 환영하며, 앞으로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금감원도 반성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며 "기존의 관행 중 잘못된 것을 찾아 고치고, 내부적으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아스팔트에서 2시간 동안 비 맞은 보람이 있다", "퇴사해야 하나 우울했는데 다행이다"는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타 금융권에서도 "축하하고, 응원한다"는 글들이 이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정이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 금융당국 관련 내용을 담지 않기로 했다 해도 완벽하게 안심할 수는 없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추후 국회 후반기 원구성 과정에서 정무위원장이 여당 의원으로 변경될 경우 금융당국 개편안이 재추진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단 이번에는 조직개편을 피했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완벽하게 백지화됐다는 확신을 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만 해도 큰 의미"라며 "금융당국이 4개로 쪼개지는 개편안은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