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팝밴드 '디엔씨이(DNCE)'의 리더 겸 보컬 조 조나스(28)가 한국 국적의 기타리스트 이진주(30)를 소개하자 공연장은 환호로 들썩거렸다.
"안녕하세요! DNCE 진주입니다"라는 본인 소개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언니, 사랑해요" "언니 섹시해요" 등의 아우성이 잇따랐다.
22일 저녁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펼쳐진 DNCE 첫 내한공연은 10년 만에 금의환향한 이진주를 주목하는 자리였다. 2007년 제대로 영어를 익히지도 못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미국 인기 밴드의 당당한 기타리스트 자격으로 당당하게 내한했다.
"10년 전에 혼자서 미국을 갔는데 아무것도 못했어요. 영어도 하나도 못했고, 혼자가게 됐죠. 힘든 순간도 많았는데…"라고 울먹거리자 곳곳에서 "울지마"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빨간 가죽 바지를 입고 무대 위에서 화려한 매너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그녀는 결국 고국 팬들과 공식적인 첫 만남 자리에서 검은 선글라스 뒤로 울음을 터뜨렸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상상했던, 꿈꿨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뤄졌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시한번 울먹거렸고 객석에서는 또 다시 "울지마! 울지마!"라는 함성이 쏟아졌다.
이진주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에서 활약한 국내파다. 가족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1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CCM 가수 소향의 시누이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음악학교를 다닌 후 아이돌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출발해 시아(Sia), 찰리 XCX 등 팝스타와 호흡을 맞췄다.
이진주는 "심장이 터져 죽을 거 같다"며 "집에 오니까 X좋아"라고 했다. 요즘 10대 사이에서 강조하는 뜻의 거친 접두사를 더해 진심을 표하자 10대와 20대 초반 위주의 객석은 더 뜨거워졌다.
그녀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한국 팬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며 "사랑해줘서 감사하고 응원을 너무 많이 해줘서 사랑해요"라고 감격해했다.
그러면서 "너무 해보고 싶었다"며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의 공식 구호가 된 "대~한민국"을 외쳤고 2000여 팬들을 공식대로 "짝짝짝짝짝"이라는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공연의 좌석은 단숨에 매진됐다. 공연주최사도 놀랄 정도로 예상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호응이 컸다.
최대 인터넷 예매사이트 인터파크 티켓의 예매자 정보에 따르면 DNCE 첫 내한공연의 10대 예매 비율은 17.0%, 20대는 무려 62.2%였다. 특히 이진주의 여성팬이 많다는 점이 특기할 만했다.
이날 예매자 정보의 남녀비율을 살펴보면, 22.8% 대 77.2%였다. 글로벌 시대에 미국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점에서 그녀를 우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진주는 DNCE 멤버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나스를 비롯해 드러마 잭 로우리스, 베이스 겸 건반 콜 휘틀은 그녀를 '진주 베이비'로 통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75분간 진행된 이날 무대에서 네 멤버의 에너지 합은 헤비메탈 밴드의 열기 이상이었다. 이 밴드의 한국 내 인기가 단지 이진주의 존재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증명했다.
저스틴 비버에 앞서 미국에서 10대들의 아이돌로 통한 조나스 브라더스 멤버였던 조나스의 인기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음악 자체가 좋았고, 조나스의 노래는 물론 밴드의 연주력 자체도 수준급이었다. 그루브와 청량감 넘치는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점은 멈추지 않은 에너지였다. 견종 중 하나인 '비글(beagle)'과 한자 '아름다울 '미(美)'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발랄하며 짓궂은 장난을 자주 치는 사람을 지칭하는 '비글미(beagle美)'가 가득했다.
등장부터 재기가 넘쳤다. 영화 '스타워즈' 인트로를 배경으로 스태프 두 명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스코트인 제국군 병사 '스톰트루퍼' 헬멧을 쓰고 깃발을 든 채 걸어 나왔다. 이후 멤버들은 광선검을 들고 장난을 치며 무대 위로 등장했다.
신나고 즐거움을 표현하는 밴드답게 멤버들은 첫곡 '네이크드(Naked)'부터 종횡무진했다. 팬들은 그루브가 넘치는 'DNCE'는 물론 이날 울려퍼진 약 20곡을 대부분 따라부르며 마찬가지로 방방 뛰었다.
천방지축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자랑한 DNCE 멤버 휘틀은 연주 도중 무대에 드러누워 다리로 박수를 치는 건 기본이고 무대 옆으로 나가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공연장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DNCE가 뜨거운 에너지로만 분위기를 압도한 건 아니다. 지난해 세상을 뜬 두 팝계 전설인 데이비드 보위의 '렛츠 댄스'와 조지 마이클의 '프리덤'을 커버하기도 했다. 이들이 두 노래를 들려줄 때, 무대 뒤에 내걸린 천막에는 두 뮤지션의 형상이 비쳤다.
어쿠스틱 셋업으로 들려준 '트루스풀리'(Truthfully)'를 들려줄 때는 미국 팝밴드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을 떠올리게 하는 조나스 보컬의 간드러짐이 더 빛났다.
어쿠스틱 셋업에서도 팬들의 활약은 여전했다. 지난 1월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내한공연 '마스터 오브 퍼페츠'의 기타 솔로 부분을 합창한 아저씨들의 기운에 못지않은 '징크스(Jinx)'의 전주를 '떼창'하는 내공도 선사했다.
앙코르가 시작되자 공연은 다시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로 달궈졌다. 스파이스 걸스의 '워너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 칸예 웨스트의 '페이드(Fade)' 등 연속된 세 곡의 커버에서 DNCE는 광포한 연주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서 9위에 오른 곡이자 이들의 대표곡인 '케이크 바이 디 오션(Cake by the Ocean)'이 마지막 곡으로 울려퍼지자 화룡점정이었다. 이진주가 객석을 향해 물을 뿌렸지만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의 팬들은 끝까지 "DNCE"를 외쳤다.
K팝이 부상하면서 국내 팝 시장이 상당히 축소됐는데 이날 DNCE와 지난달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첫 단독 내한공연을 연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에 대한 국내 10~20대의 반응은 톺아볼 만하다. 이 세대 중 두 공연 모두 혼자서 공연장을 찾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들떠서 공연장을 나가던 10대 후반의 여성 팬은 "진주 언니가 너무 멋있고, 오늘 울먹거리면서 전해주신 멘트가 너무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