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해운산업 붕괴' 구조조정 지휘한 정부 책임론 확산

한진해운 청산·현대상선 세계 해운동맹 반쪽 가입


국내 해운산업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국내 해운물류 산업을 개척해온 한진해운은 사실상 청산쪽으로 기울고 있고 현대상선은 세계 해운동맹 반쪽 가입 논란에 휩싸이는 등 해운산업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 1위·세계 7위였던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 현대상선을 키워 공백을 메우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결과적으로 40년 역사의 국내 해운산업을 붕괴시키는 결과만 가져온 것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도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켰다" "거대 해운사를 상대로 최선의 결과를 얻어냈다"는 등 면피성 발언만 쏟아내고 있어 해당 이해관계자들의 불만은 물론 업계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가 산업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금융논리로 구조조정을 밀어 붙인 것이 국내 해운산업의 붕괴를 일으켰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해운산업에 대한 정부의 무지가 한진해운의 청산, 현대상선의 세계 해운동맹 정식 가입 실패 등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해운업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했는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세계 해운시장 환경과 크게 동떨어진 잣대를 들이댔다.

당시 세계 유수 해운업체들은 치열한 운임 경쟁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 나가던 때다.

그런데 국내 해운사들은 "부족한 유동성은 스스로 해결하라"는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에 밀려 벌크선 사업부, 운항 선박 등 알짜자산을 하나둘 매각하며 점점 왜소해져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안팎에서는 두 회사를 합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때도 "양사의 부실만 확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금융논리를 앞세웠다.

이후 정부는 양사와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사채권자 채무조정 ▲용선료 조정 ▲세계 해운동맹 가입 등을 요구했다. 이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경우에만 채권단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현대상선은 사채권자 채무조정, 용선료 조정에 성공했지만 세계 해운동맹 가입을 완결짓지는 못했다.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과 업무협약(MOU)을 맺은 정도였다.

한진해운의 경우 '디 얼라이언스'라는 해운동맹에 가입했지만 사채권자 채무조정과 용선료 재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며 현대상선을 살리고 한진해운을 죽이는 결정을 내렸다. 한진해운이 파산할 경우 세계 물류대란 발생은 물론 국내 해운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정부는 현대상선을 키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태도였다.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세계 물류대란이 발생하며 국내 해운산업에 대한 글로벌 화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고 현대상선의 2M 가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현대상선은 2M과 일부 선복(컨테이너 적재공간) 구매·교환 등의 제한적 협력을 맺는 데 그쳤다. 노선과 선박을 공유하거나 수익을 나누는 일반적인 해운동맹과는 다른 형태다.

또 오는 2020년 3월까지 2M의 허락 없이 선대를 확장하지 못하는 규정에 발목이 잡히면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 등을 통해 현대상선을 세계 5위 선사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무색해졌다.

김인현 한국해법학회 회장은 "2M의 수송능력은 약 600만TEU(1TEU는 6m길이 컨테이너 1개)이지만 현대상선은 약 50만TEU"라며 "수송능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에 동등한 입장에서 선박을 공동운항하는 수준의 협정까지는 체결이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을 하거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들어간 후에라도 한진해운의 영업망을 현대상선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진해운 미주노선 영업망은 SM그룹에 인수됐다. 알짜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롱비치터미널 지분(54%)의 경우 현대상선-MSC 컨소시엄이 인수할 가능성이 크지만 경영권이 MSC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 MSC는 2M 소속 세계 2위 스위스 선사로 롱비치터미널 지분 나머지 46%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현대상선과 이 회사 대주주이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정부 등은 '최선의 결과'라는 면피성 발언만 계속하고 있다. 2M과 같은 거대 해운사를 상대로 이 정도 성과를 낸 것만 해도 충분한 선방이라는 얘기다.

한진해운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한진해운이 세계 7위권 선사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됐다"며 "글로벌 해운시장의 치열한 치킨게임과 인수합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진해운 수준의 선사가 국내에서 다시 나오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만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속이 탄다"라고 하소연했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