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삼아 회생을 모색한다.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증자에 참여키로 한 것은 유상증자 성공 여부가 앞으로의 회생 여부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유상 증자에 실패하면 상장 폐지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증자 참여는 삼성엔지니어링의 회생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내년 2월까지 보통주 1억5600만주를 주당 7700원씩 발행해 총 1조2012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기존 주주들이 포기한 실권주를 일반 투자자에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부회장은 이 실권 주식을 3000억원 한도에서 일반 공모를 통해 사들일 계획이다.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 참여 의사를 밝히자 이달 8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도 25% 가까이 급등했다. 주가가 큰 폭으로 반등하자 아예 실권주가 나오지 않아 이 부회장이 공모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 부회장의 '사재 투입' 카드는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가 당초 계획대로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추가 부실 우려도 제기됨에 따라 소액주주들이 유상증자 참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3분기 1조51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 2011년 무리하게 해외 플랜트 프로젝트를 저가로 수주한 탓이다. 최근에는 중동국가들이 저유가로 자금난에 내몰리자 공사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있다.
대규모 적자 여파로 삼성엔지니어링의 자본은 1조334억원에서 마이너스 374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500억원 상당(장부가 기준)의 사옥을 매각하는 한편 유상 증자를 추진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삼성엔지니어링의 1대 주주인 삼성SDI(지분 13.1%)와 2대 주주인 삼성물산(7.81%)도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삼성SDI와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 유상 증자 참여 결정 때문에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달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SDI 주가는 11만9500원으로 전일보다 5.16% 떨어졌다.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자금 지원 가능성이 높아지자 투자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증자 참여 카드가 동원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발(發) 위기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다른 계열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회생 가능성은 '산 넘어 산'이나 다름없다. 우선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수익성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 증자 성공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증자에 성공하려면 소액 주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국민연금도 지분 3.97%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이 증자에 참여하려면 이 부회장의 증자 참여 카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부회장의 증자 참여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소액주주들로서는 무엇보다 수익성 개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 여건은 녹록지 않다. 저유가 기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유가 반등 기대는 물 건너갔다. 해외 사업 의존도가 높은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서는 업황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서는 이같은 위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다. 이런 청사진을 바탕으로 주주들을 잘 설득해야 증자를 마무리할 수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를 삼성물산이나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을 위한 수순으로 보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간 합병이 주총을 통과했으나 과도한 주식매수청구권 부담 때문에 포기한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유상증자에서 3000억원을 모두 투입한다고 가정하면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 19.8%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삼성SDI와 삼성물산의 보유 지분까지 합치면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발표 이후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증자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 "지금은 합병을 거론하기에는 이른 단계이며, 삼성엔지니어링의 정상화가 먼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