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주식 관리하는 직원이 자기 주식 거래하느라 바쁜데 어느 주식을 먼저 신경 쓸지는 뻔한 것 아니냐."
모 증권사 지점의 직원에게 주식을 추천받아 매매하는 홍장춘(44세)씨는 이같은 속내를 털어놨다. 해당 직원이 하루에 수십번씩 자기 주식을 거래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나서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게 홍 씨의 얘기다.
실제 지난 국정감사 때 공개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 10회 이상 자기주식을 매매하는 증권사 직원이 1163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90번 주식을 사고 판 사람도 있었다.
홍 씨는 해당 직원의 자기매매 사실을 알고난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 자기매매에만 몰두하는 데 고객 자산 관리에 신경이나 제대로 쓰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해 주식을 매매한 이후에 수익률이 좋아졌다는 게 홍 씨의 설명이다.
실제 한화투자증권이 지난해 5만3000여명이 고객 계좌를 분석한 결과 전담 관리자가 있는 고객의 계좌 수익률이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고객의 계좌 수익률 보다 나빴다.
특히 증권사 직원 자기매매의 문제점은 고객보다 직원 본인의 이익 추구를 우선시 한다는 측면에서 증권업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증권사 영업직원들이 자기매매를 하는 이유는 순수한 재테크 목적도 있지만 자기매매를 통해 실적 충당 목적이 크다. 이는 증권사들이 직원들의 자기매매도 영업실적으로 인정해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고객 돈이든 직원 돈이든 상관없이 당장 실적만 올리면 된다는 식의 증권사 경영방식 하에서 영업직원들의 자기매매를 방치해온 것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 영업직원들이 자기매매를 하면서 고객 자산까지 관리하는 게 제대로 될 리 있겠느냐"라면서 "증권사들은 은연중에 영업직원들의 자기매매를 유도 내지는 방치하고 있다. 오랜 관행이 증권맨과 투자자 모두를 멍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들이 임직원 자기매매로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은 675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탁수수료(약 2조9000억원)의 2.3%에 달하는 수준이다.
최근들어 직원들의 자기매매 실적을 영업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증권사들이 늘어나면서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NH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이 지난 8월부터 영업직원의 자기매매 거래 실적을 성과급에 반영하지 않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동참했다.
KDB대우증권과 현대증권 등 다른 대형사들도 영업직원의 자기매매 거래실적을 성과급 산정 시 제외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은 영업직원들의 자기매매 실적을 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제도를 유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영업직원들의 과도한 자기매매 관행을 고치기 위해 업계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금융투자협회 모범 규준에 적용토록 했다.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차원에서 택한 방안이다.
금융감독원 이은태 부원장보는 "증권사들의 과도한 임직원 자기매매 등 일부 영업 행태는 스스로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깎아 먹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강제적으로 하기보다는 업계 자율성을 존중하되 자기매매 실적을 성과급에 반영하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