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를 일기로 10일(현지시간)타계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혹독했던 냉전기에 서독의 최고지도자(1974~1982년)로서 전후 독일 경제성장을 이끌고, 유로화 체제의 기틀을 닦았으며, 동독 공산정권 등 동유럽 국가들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등 '데탕트 외교'로 통독의 기반을 다진 '시대를 앞선 정치인'이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슈미트를 '세기의 조종사(Pilot of Century)'로 평가한 바있다.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슈미트의 부음이 전해진 후 BBC 등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탁월한 총리였다"며 " 그의 죽음이 독일과 유럽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역시 " 헬무트 슈미트의 부음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유럽은 정치적 용기로써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던 특별한 인물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민주당(사민당) 당수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슈미트의 업적은 유럽 그 자체"라는 말로 유럽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고인을 추모했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 고인은 2011년에 한 위대한 연설에서 '독일은 유럽 내에서 과도하게 리더십을 발휘해서는 안되며 유럽을 통합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면서 "(난민위기사태 등으로) 유럽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가는 요즘 슈미트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역시 슈미트 전 총리를 "위대한 유럽인"으로 표현하면서 "고인은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독일 국민들에게 그들이 유럽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역설했던 인물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18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슈미트는 십대때 히틀러 유겐트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2차세계 종전 후에는 사민당에 입당, 1953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투신했다. 1968년 사민당의 부의장을 역임했으며, 빌리 브란트 내각의 국방장관(1969~72), 재무장관(1972~74)을 지냈다. 브란트 사임 후 사민당 당수로서 1974년 5월 총선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총리로 선출됐으며, 1976년 재선에 성공했다가 1982년 총선에서 헬무트 콜의 기독민주당에 패배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87년 정계에서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