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남들 앞에서 두려움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교육받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공포나 두려움의 극단적 감정을 연기하려니까 조금 창피하기도 했죠. 현장에 여자 스태프들도 많으니까. 처음에는 ‘컷’ 하고 나면 왠지 숨고 싶어졌죠.”
신비한 이미지 때문에 강동원(34)은 늘 저 멀리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TV 예능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드라마에도 2004년 ‘매직’ 이후 출연하지 않고 있다. 함께 작업한 선후배들은 그를 “상남자”라고 평한다. 사생활을 중시해 까칠하다는 인상이 있지만 상남자에 가깝다는 말이 맞을 듯도 하다.
아직까지 경상도 억양을 구사한다는 점도 그렇다. (흔히 경상도 남자들은 상경했다고 갑자기 표준어로 말하는 것에 어떤 부끄러움을 느낀다)
‘검은 사제들’ 촬영현장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 스태프들 앞에서 창피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그가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남자라는 점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있어진다. 최근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개봉을 앞두고 만난 성유리도 마찬가지였다. SBS ‘힐링캠프’를 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공이 쌓인 영향도 있겠지만 스스로 여유가 생겼다고 인정했듯, 실제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강동원도 마찬가지다. 한결 여유가 있어진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나 연기자로서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털어놨다. 데뷔 초 유아인, 임수정과 더불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신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근자감’을 갖게 된 비화도 밝혔다.
강동원은 ‘검은 사제들’에서 엉뚱하지만 영적 기운이 강한 신학대생 ‘최 부제’를 연기했다. 무신론자였기에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소개를 받아 신부와 몇날 며칠을 함께 했다.
“꼭 신학생의 세계를 아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죠. 평소 생각부터 하는 일, 예식의 과정을 배웠어요. 엑소시즘에 대해서도 물어봤죠. ‘노코멘트’라더군요. 예민한 문제니까.” 성물들은 하나하나 다 꺼내봤고 그 성물의 의미도 꼼꼼히 이해했다.
“향을 피우면 왜 피우는지, 소금과 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고 표현해야 미묘한 표정이라도 묻어나올 거 같았죠. 근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성찬 예식에 구마 예식이 포함돼 있더라고요. 포도주의 경우 영화에서는 웃음의 포인트로 김 신부가 ‘좀 비싼거 사오지’하는데, 원래는 예식에 쓰는 포도주가 정해져 있어요.”
이렇게 공을 들인 이유는 “신부님들의 고뇌와 그들이 가진 무게감과 사명감, 희생정신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게 배우로서 사명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에는 무신론자라고 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제는 종교가 없다, 무교라고 해요.”
최 부제는 어릴 적 여동생과 놀다가 흉폭한 개에게 공격을 당했다. 소년에게 그 개는 마치 괴물처럼 두려운 존재였고, 혼자만 살아남은 자로서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강동원은 자신 역시 배우로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했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두려움과 어려움이다.
“20대 초반에 사회에 나오면서 사회와 부딪혔어요. 뭔가를 포용하기에는 미숙한 나이였으니까. 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날 어리게 생각하고, 성격 나쁜 애로만 볼까봐 걱정됐고, 뭔가 실수할까봐 무서웠죠.”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직업의 특성도 부담스러웠다. “나쁜 짓을 하거나 휘말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어요. 이제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죠. 건전한 대한민국 30대 중반의 남자가 아닌가. (웃음)”
강동원은 한창 연기가 재미가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연기가 더 나아질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전우치’(2009) ‘의형제’(2010)를 기점으로 현장이 편해졌어요. 내가 이 안에 녹아 들어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얼마나 자유로워지는 지가 제 관심사였죠. 근데 공익 근무 2년하고 돌아오니 그 자유로움이 사라진거예요. 정말 충격이었죠.”
자유로움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됐다.
“내가 어떤 연기를 디자인해도 그게 구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 되더라고요. 시나리오에 적힌 그대로 할 수도 있고 감독의 지시를 받고 그걸 할 수도 있는 수준에 이르자 자유로움이 느껴졌죠. 근데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고민했죠.”
‘군도’(2014) 이후 1년째 발성연습을 한다고 고백한 그는 “친구인 주영진 재즈보컬리스트에게 배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친구니까 막 이야기하면서 할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재미있어요. 실력이 늘어서 의욕적이예요. ‘두근두근 내인생’(2014)을 기점으로 조금 변화를 느꼈고 ‘검은 사제들’(2015)과 (개봉을 앞둔) ‘검사외전’ 하면서 자리잡아가는 듯해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발성에 자신이 생기면서 디테일로 숙제가 넘어갔다. “어느 날 이명세 감독님을 만나 요즘 디테일이 고민이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면서 깊이는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하셨죠.”
‘근자감’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줬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10대 후반 난 최고라고 말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실제로 자기 분야에서 잘했어요. 전 그때 자신감이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제가 소극적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그 애가 저를 인정해줬거든요.”
조금씩 자신을 바꾸자 자신감이 생겼다. “일 시작하면서는 그게 몸에 배어서 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죠. 현실적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배우란 직업이 수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생쇼를 해야 하는데, 주눅들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특히 삐죽대면 테이크가 오래 가니까, 그냥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죠.”
강동원은 한때 게임을 하거나 가구를 만드는 일로 휴식을 취했다. 요즘은 하도 바빠서 유일한 취미가 맛집 탐방이다. 어차피 삼시세끼는 해결해야 하니까.
“딴 거는 할 시간이 없고 짬 내서 하는 유일한 취미가 밥 먹기예요. 좋은 재료로 심플하게 요리하거나 엄청나게 다양한 맛을 구현하는 요리를 좋아해요. 가구 만들기는 기술 배워놓은 게 있으니까 나중에 결혼해 마누라가 시키면 그때 만들어야 할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