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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이천희, 신과 인간 중간계 존재로 착각하는 배우 있다

패션모델(186㎝) 출신 배우인데도 친근한 편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어수룩해 보인다. 영화 ‘돌연변이’의 권오광 감독도 배우 이천희의 이런 이미지에 주목했음이 틀림없다. 

이 영화에서 이천희는 기자를 지망하는 지방대 출신 N포세대 ‘상원’를 연기했다. 부족한 스펙 탓에 계약직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첫 임무로 ‘생선녀 전말’을 취재하게 되는데, 참 서툴다. 

할 말 다하는 발칙한 취준생이자 ‘생선녀’ 주진(박보영)보다 더 겁도 많고 배짱도 없다. 하지만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 참여했다가 생선인간이 된 박구(이광수)를 둘러싼 세상사를 취재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마지막에 상원은 자신의 주관과 신념대로 행동하는 기자가 된다. 알고 보면 자기주관이 뚜렷한 진짜 이천희와 닮았다.

어리숙한 이미지와 달리 자신을 잘 알고 자기고집이 있는 사람, 자신의 삶이 중요한만큼 타인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어른스런 남자라는 게 부인이자 여배우인 전혜진(27)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살짝 엿보였다. 

-상원 역할이 이천희와 잘 어울렸다. 캐릭터에 공감해야 연기가 가능하다던데 공감한 지점이 컸나?

“상황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공감이 됐다. 상원이 언론사 파업 덕분에 기회를 얻게 되는데 신인들도 선배 연기자들이 잠시 빠져있을 때 기회를 얻게 된다. 면접에서 ‘시켜만 주면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데, 나도 오디션 볼 때 무슨 역할이라도 좋으니 주면 잘해보겠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영화 내내 탈을 쓰고 나온 이광수씨도 힘들었겠지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이광수씨를 상대로 연기한 이천희 씨도 연기하기가 녹록지 않았겠더라.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광수씨가 몸이나 손동작으로 표현해줘서. 생선 탈 안에서 하는 심리적 액션이 느껴졌고 감정이 전달됐다. 광수가 또 제게 늘 얼굴 각도 등을 확인받았다. 이를테면 이 대사를 할 때 내가 형을 보고 싶은데, 네 생선 얼굴 각도가 형을 보는게 맞느냐고 물어봤다. 연기하던 그 순간의 공기에 감정이 전달돼 별 문제가 없었다.”

-극중 지방대라고 괄시(?)받는 상원과 달리 이천희는 서울예대 출신이다. 연예계에서는 나쁘지 않은 학력이다. 

“그럼에도 중앙대나 동국대 출신들을 보면서 내가 떨어진 학교 출신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나고 보면 학교 그런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상원도 나중에 정식 기자가 되는데, 자신이 바라던 삶인지 고민한다. 대기업 다니는 동창들 만나면 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서 좋겠다면서 부러워한다. 그럼 너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다수가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라고 자문한다. 아직도 못 찾았다는 게 씁쓸했다.”

-어릴 적부터 자기 생각이 분명했나?

“그런 편이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면 난 하고 싶지 않은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막연히 연극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교사였는데 엄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씀드릴 때 진짜 무서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절실했던 순간이었던 거 같다. 다행히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생겼다니 해보라고 해줬다. 서울예전 면접 볼 때도 무대경력도 없고 실력도 딱히 없었는데도 합격한 게, 나는 꿈이 없다가 갑자기 찾았다고 솔직히 말했었는데 그게 좋아보였나 싶다.” 

-데뷔 초기 기회를 잡기가 어렵지 않았나?

“모델 일을 한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람난 가족’의 경우 임상수 감독이 잡지에서 나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연락이 왔었다. 불륜 상대역이라 두 신 밖에 안 나와서 친구들이 왜 그런걸 하러 가느냐고 했지만 나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운이 따랐다. 연기 시작할 때 부모님이 생계 걱정을 했는데, 나는 굶어죽더라도 무대에만 서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 말 듣고 뒷골을 잡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잘살고 있잖아, 이 정도면 된거 아닌가 싶다.”

-속도위반으로 결혼했다. 장인 만나러 갈 때도 인생의 절실한 순간이었을 거 같은데.

“하하. 그때는 허락해줘야지 어쩌겠어, 속으로 생각했다.” 

-또래 연기자보다 결혼을 빨리 했다.

“학교 친구들은 결혼을 했는데, 연기자 친구들은 안 했다. 근데 나는 결혼 못할줄 알았다. 결혼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 목공에 캠핑에 스쿠버다이빙, 서핑, 수영 등. 누가 나의 이런 취미를 받아줄까? 그러던 어느 날 전혜진씨를 만났는데 스쿠버다이빙 빼고 다 같이 한다. 좋아하는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내가 그림 그리면 나는 목공하는 식이다.” 

-아내가 이번 ‘돌연변이’ 보고 “고민 많이 하더니 잘했다”고 칭찬했다고?

“솔직히 상원은 배우들이 꺼리는 배역이다. 밋밋하달까. 뭘 안 한거 같은 역할이거든. 오빠 고민 많았겠다, 잘 어울린다고 해줬다. 와이프가 그렇게 칭찬해주니까 다르더라. 권위있는 사람에게 인정받는 기분. 근데 아내 말로는 내가 이 영화 찍을 때 무척 행복해했다더라. 스태프들도 그랬다. ‘돌연변이’ 팀과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감독님과도 만나면 늘 낄낄댄다.”

-아내가 연기자로 바빠지면 내조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아내가 작품하면 너무 좋다. 작품 할 때와 안 할 때 그 에너지가 다르다. 육아하느라 바쁜 요즘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아내가 고민이 많다. 스물여덟 살이면 젊지도 늙지도 않았다. 어떤 역할을 하기 애매한 나이다. 게다가 육아 때문에 작품을 고를 때 아이를 돌보는 시간보다 더 값진 작품인지를 고민하더라. 마냥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의미있는 작업인지를 따지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멋있더라.”

-대배우가 될 자신이 없다는 발언은 무엇인가?

“왜곡됐다. ‘화장’에서 전혜진씨가 안성기씨 딸로 나왔다. 임권택, 안성기 등 영화계 거장들과 작업했는데 전혀 주눅 든 느낌이 들지 않고 제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아마 나라면 위축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서 와이프가 커 보였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근데 그 말하고 주위에서 핀잔을 많이 들어서 정정하고 싶다. 나도 임권택, 안성기 거장님들과 만나도 아내만큼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이천희는 대배우가 되기보다는 이천희 개인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해석됐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배우들 중에는 배우를 직업 이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마치 신과 인간 그 중간 단계로 배우가 존재하는 것처럼. 작품을 위해서만 이천희의 모든 게 존재하는 그런 삶이 맞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나는 인간 이천희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다. 배우도 여러 직업 중의 하나지 배우라는 종족은 아니라는 거다. 연기에 모든 걸 던지는 모습도 멋있어 보이지만 나는 그냥 캠핑도 가고 싶은 사람이다.” 

-어눌하면 보통 줏대 없어 휘둘린다고 오해하는데 전혀 아니네. 

“근데 다른 배우들이 나를 보면 이상해 할 거 같다. 쟤는 왜 갑자기 결혼해, 왜 갑자기 공방을 다녀, 한 달 어디갔어? 뭐 다이빙하러 갔다고. 근데 나는 이천희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크다. 와이프도 당신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거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거 다 하는 거 같다고. 이걸 선택했으니 다른 것은 감수하자? 난 그럴 수가 없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이천희의 다음 행보는 뭐냐?

“모르겠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 자신을 지켜가고 싶다. 차기작은 이것저것 보고 있다. 사실 요즘 좀 고민이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하고 싶은 역할 사이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재미있겠다, 해볼까 했는데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좀 더 기다려볼까, 그런 상태다.”

-무슨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

“딱히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는 관점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캐릭터는 죽인다 그러는데 난 잘 공감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일테면 멜로드라마에서 목숨 바쳐 사랑한다든지 그런 감정의 폭이 매우 큰 캐릭터 있잖나. 그런 인물들을 이해하기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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