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수요 부진 여파로 수출이 위축되자 제조업체들의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재고 증가는 현금 유동성 악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재고 축소를 위해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이 재고 조정에 들어가면 공장 가동률이 낮아진다. 아울러 설비 투자 및 고용 수요도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산업생산과 제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3%,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제조업 내수 출하는 같은 기간 1.0% 늘었지만, 수출 출하는 0.1% 감소했다.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6월 75.2% ▲7월 74.7% ▲8월 74.3% 등으로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설비와 건설투자 개선 추세에 힘입어 내수는 완만히 회복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해외수요 위축 영향으로 수출 감소세가 확대되자 제조업 업황도 악화되는 추세다. 제조업 재고가 늘어나는 것드 이 때문이다.
8월 제조업 재고율지수(재고/출하 비율)는 128.4로 전년 동월보다 5.6% 증가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분야별로 석유정제 10.3%, 화학제품 6.4%, 1차 금속 1.1%, 반도체 15.2%, 기계장비 6.2%, 자동차 11.7% 증가했다.
재고율 상승은 수출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3% 감소해 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지역별로는 EU(+19.7%) 지역 수출이 늘었지만 중국(-5.0%), 일본(-24.3%), 미국(-3.7%) 등에 대한 수출은 감소했다. 품목별로는 무선통신기기(40.9%) 수출은 급증했으나 석유류(-30.2%), 철강제품(-21.6%), 선박(-20.4%) 등 대부분 주력 품목이 부진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 수출이다. 한양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7월 현대자동차의 해외판매(수출+해외공장)는 236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했다. 기아차는 외국시장에서 1.5% 늘어난 147만대를 팔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당분간 수출이 큰 폭으로 반등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면 재고 증가로 생산과 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실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지난 8월 높은 재고율을 이유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수출 감소세 지속과 이에 따른 광공업 생산과 출하의 부진은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내수지표는 반등하는 기미가 있지만, 수출이 생산의 발목을 잡고 있어 확 좋아지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무엇보다 중국의 경기 부진에 따라 대중국 수출이 감소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도 당초 우리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위안화 환율이 5% 하락하면 총수출은 3% 감소한다. 산업별로 보면 기계가 - 5.5%로 가장 타격이 크고 석유화학 -3.7%, 철강 -2.5%, 자동차 -1.9%, IT -0.3% 등의 순이다.
실제 현대차는 올해 1~7월 중국에서 56만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보다 10.9% 줄어들었다. 기아차도 33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했다. 지난달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7월보다 각각 32%, 33% 줄어들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이 가공무역을 축소함에 따라 한국산 부품 수입이 줄어들고 있고, 우리 상품의 수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하고 있어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고 있고 재고가 늘어나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재고 소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려 중이다"고 했다.
재고 증가에 대한 우려는 지난달 17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도 나타난다.
한 금융통화위원은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하반기 중 수출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앞으로 재고 증가가 투자와 생산을 제약하면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