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주식대여규모를 올들어 크게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여 주식이 기관투자가에 의해 공매도로 활용돼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부추긴다는 점을 지적해 온 정치권에서 주식대여 금지를 골자로 한 법개정을 추진한 데 따른 변화로 풀이된다.
21일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월별 주식대여 현황에 따르면 올 초부터 2분기말(1~6월)까지 대여한 주식은 누적 174종목, 총 3976만9651주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대여한 6080만9088주에 비해 34.6%가 줄어든 규모다.
연금은 2012년 2372만5385주, 2013년 3578만103주를 기관투자가에 대여하는 등 2014년까지 3년간 대여규모를 늘려오다 올해 들어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5월말 홍문표 의원실은 대여주식이 공매도로 활용될 경우 국민들의 재산상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연금의 주식대여사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 1분기 2451만8617주를 대여했지만 개정안 발의 후인 6월 들어 대여규모를 급격히 줄인 탓에 2분기에는 이보다 약 1000만주가 줄어든 1525만1034주 대여에 그쳤다.
아울러 대여 종목수도 크게 줄였다. 지난 3년간 208종목이던 종목수는 1월 100개, 2월 109개, 3월 141개, 4월 127개, 5월 128개로 올 초부터 매달 늘려 갔지만, 개정안 발의 후인 6월 123개, 7월 118개, 8월 117개 등으로 점차 줄여갔다.
그간 국민연금으로부터 대여한 주식으로 파생상품을 운용해 온 투자자문사 및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사이에서는 연금 측에서 대여물량을 줄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입 후 공매도만 가능해 쇼트(매도) 전략 구사시 주식대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롱쇼트 전략을 기반한 헤지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보통 증권사에 주식대여 요청을 하면 증권사는 PBS(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를 통해 연금 등 대여주체로부터 물량을 구해 오는데 최근 들어 못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홍문표 의원실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 발의 후 연금에서 신규 대여를 안 해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로 인해 대여물량이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여량이 많았던 조선·건설·철강 등의 업종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대여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돼 주가하락을 유발했다는 그간의 논란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커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 역시 "최근 2~3개월간 물량을 구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대여수수료까지 올라간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국민연금 주식대여 금지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서부터 국민연금과 한국증권금융 등 대여 주체들이 주식대여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연금으로부터 주식을 대차해온 한 증권사 PBS 관계자도 "최근 들어 국민연금으로부터 받는 물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연금은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제2항 제3호에 따라 수익성 증대 차원에서 보유주식을 기관투자가에게 대여해 왔다.
연금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총 208종목의 주식 1억9887만933주를 기관투자가에게 빌려줬다. 지난해 대여거래를 통해 약 111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뉴시스는 이 기간 주식대여 현황을 토대로 대여주식이 공매도로 활용됐을 경우 개인투자자에 끼쳤을 피해가 약 3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치권이 앞장서 연금의 주식대여사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 대여물량 감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문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가 됐는 데도 무시하고 계속 대여할 순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법 개정안 추진 얘기가 나오자마자 국민연금에서는 한동안 신규 대여를 일절 안 해준 걸로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관계자도 "최근 국내 장세가 좋지 못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탓도 있지만,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도 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여 당사자인 국민연금과 연금 주식을 위임받은 수탁은행에서는 대여물량을 줄인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연금 관계자는 "직접 관리하는 주식의 대여물량은 줄이지 않았다"라면서도 "보유 주식을 위탁받은 수탁은행 차원에서는 물량을 줄였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수탁은행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대여물량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았을뿐, 기존 수준에서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물량이 줄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추가 물량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인 걸로 판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국회에서 법 개정안을 추진한 것이 전적으로 이런 기조를 만들어냈다고는 볼 순 없겠지만 상당한 영향은 있었을 것으로는 보인다"고 추론했다.
이에 대해 법안을 대표발의 한 홍문표 의원은 "연기금이 국민을 위한 사업의 재원확보를 위해 대여 수수료를 받아왔다고 하지만,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동안 수많은 국민들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다"며 "연금의 주식대여량이 전체 대차거래 중 비중이 적다면 사업을 중단하고 다른 수익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