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증권사 본사 영업점에서 일하는 정모 대리(32)는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거액을 대출 받아 자기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팔아 실적을 올리는 '자기매매'에 나섰다가 이른바 '깡통'이 됐다. 월급 400만원을 받는 정 대리는 월급의 3배인 1200만원의 수수료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임금의 20%가 깎인다. 증시 불황에 고객이 줄어든 상황이라 실적을 채우려면 그에게 자기매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 또 다른 증권사의 배모 전무(57)는 얼마 전 열린 회사 내부 투자전략회의에 참석해 솔깃한 정보를 들었다. 다음주 상승 유력종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식운용팀의 투자종목을 알게 된 것이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배 전무는 회의가 끝난 뒤 본인의 주식계좌에서 26개 종목을 매매해 수백만원의 이익을 얻었다. 나중에 이같이 사실이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7개 증권사 임직원의 1인당 연평균 자기매매 횟수가 440회로 집계됐다.
증권사 전체 임직원(3만6152명)의 80%인 2만5550명이 실제 자기매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하루평균 10회 이상 매매하는 직원도 1163명이나 됐다.
자기매매란 증권사가 회삿돈으로 자신의 책임 아래 유가증권을 사고 파는 행위를 말한다. 고객 주문을 받아 매매를 대행하는 위탁매매와 구분된다. 또 증권사의 자기 매매와 임직원의 자기매매로 구분되는데, 임직원 자기매매는 엄격히 제한된다.
임직원 자기매매는 원래 원래 불법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증권거래법 등이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통합제정되면서 본인 명의로 된 1계좌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분기별로 매매명세를 통지하면 된다.
증권사들은 매매횟수와 회전율을 정해 직원들의 자기매매를 제한하고 있지만 회사별로 '천양지차'이고, 내부통제수준도 미흡해 실상은 별다른 제재 없이 자기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직원들은 대부분 재테크 목적으로 자기매매를 하지만 회사의 실적 압박에 자기매매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금융노조 관계자는 "증권사 직원들은 각종 실적에 따른 압박으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자기매매에 나서게 된다"며 "증권산업에 만연한 성과주의와 약정 강요라는 근본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증권사가 고객 돈과 직원 돈을 구분없이 영업 실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가능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들이 임직원 자기매매로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은 675억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수탁수수료(약 2조9000억원)의 2.3%에 달하는 수준이다.
직원들의 과도한 자기매매는 증권업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객 자산 관리는 뒷전인 채 자기매매에만 매달리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증권사의 직원은 자기매매로 하루 평균 190번 넘게 주식을 사고 판 사례도 있었다.
또한 배씨 사례처럼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사례도 적지 않다. 올해 초엔 금융투자협회 노조위원장 이모 씨가 미신고계좌를 통해 9억원 가량의 주식 투자를 한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금융위는 최근 주식매매 횟수를 하루 3회, 월 회전율 500%, 5영업일 의무보유, 자기매매에 대한 성과급 지급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자기매매근절 대책을 방안을 만들어 증권사들이 자율시정토록 주문했다.
증권업계 일선 영업직원들은 자기매매를 실적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에 대해선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반응이다.
증권사들이 자기매매를 수익에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영업직원들에 대한 실적 압박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전율 제한, 의무보유 기간설정 등의 자기매매 근절 방안에 대해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 증권사의 영업부 부센터장은 "현장에서 고객과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엄격히 관리해야한다는 취지인 것 같다"면서도 "과도하게 자기매매하는 직원들에게 실적으로 인정하는 않거나 회전율 제한을 두는 식으로 해야지 5일 동안 팔 수 없게 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회전율과 매매횟수는 그렇다 치고 5영업일 동안 의무보유 기간을 두면 매수한 종목이 하한가를 맞으면 손실을 피할 수가 없다"면서 "증권사 직원에 대한 역차별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