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호황 국면을 불러올 전조로 해석됐던 '저유가'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기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낮은 유가가 오히려 침체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세계 3대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반기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 개선에 대한 신호는 보이지 않는데다, 차이나 쇼크로 글로벌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 확산과 함께 저유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다시 수면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을 두고 40~50달러 선에서 반등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유가는 최근 3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일(25일)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1배럴당 39.31달러로 약 6년 반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도 지난 6일 50달러선이 무너진 뒤 25일 1배럴에 47.04달러까지 떨어졌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43.21달러를 기록했다.
낮은 유가가 산업에 미치는 수입 비용 절감 등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저유가의 근본적 원인으로 수요 위축을 지목한다. 중국 경기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유 수요는 줄어든 것이 유가 하락을 재촉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중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늘려 왔던 후폭풍이 지금 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이란 원유 생산 확대 등이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도 더해지면서 유가 하락을 재촉하고 있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유가와 함께 원자재 가격도 하락하면서 자원으로 먹고 사는 신흥국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광석과 석탄, 구리 등 자원이 많이 나는 브라질과 남아공을 포함해, 특히 유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러시아 등의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의 경기 하강으로 원유·원자재 수요가 더 줄어들 수 있어 세계 경제가 더 위축, 디플레이션 우려는 커지는 상황이다. 중국 경기 둔화→원자재·중간재 수입 감소→원유 등 가격 하락→글로벌 주가 하락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저유가의 부정적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한국 수출 비중의 약 20%를 차지하는 석유와 석유화학 제품 단가가 떨어지고 물가 하락은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앞으로 국내 경제는 확장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메르스 사태의 소멸 등에 힘입어 회복세를 나타내겠지만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은 높다"면서 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는 "저유가의 영향 등으로 낮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