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엘리엇 메니지먼트(엘리엇)와의 법정 공방 1라운드에서 완승했지만 양측간 간 표 대결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분위기다.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 결정이 미뤄지면서 오는 17일 주주 총회를 앞두고 양측의 우호지분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부장판사)는 엘리엇이 제기한 '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에 대해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제시한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은 관련 법령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산정기준 주가가 부정행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닌 이상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 경영진이 주주 이익과 관계없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 즉 제일모직 및 그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오너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 승계 작업은 계속 추진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원은 엘리엇이 제기한 또다른 가처분 신청 건인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에 대해서는 오는 17일 전에 결정하겠다면서 판단을 보류했다.
표 대결을 앞둔 양측에겐 자사주 처분 금지 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성물산이 우호 관계에 있는 KCC에 넘긴 자사주 899만주(5.76%)의 의결권의 행사 여부에 대한 판단에 따라 표 대결 판세가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엘리엇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KCC에 매각된 5.76%의 지분은 의결권이 사라지게 된다. 엘리엇 입장에선 단숨에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의 우호 지분은 KCC의 5.96%를 포함해 19.95%가 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관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21.2%다. 이 중 국민연금이 10.1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은 엘리엇의 7.12% 등 33.61%를 보유 중이다.
삼성과 엘리엇은 이들 지분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물밑 작업을 치열하게 전개할 전망이다.
약 11%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관 투자자들은 삼성 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의 관계나 투자 수익률을 감안하면 합병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0.5%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신영자산운용은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는 주주들도 속속 모이고 있다. 삼성물산 지분 2.37%를 보유한 일성신약 윤석근 대표이사는 국내 투자자 중 처음으로 합병 반대 의사를 밝혔다. 0.3%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0.3%)도 일찌감치 합병 반대의사를 밝혔다.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도 삼성물산 지분 2%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엘리엇과의 공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결국 10.15%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장외 여론전도 치열하다. 삼성은 최근 잇따라 긴급 기업설명회(IR)를 열어 여론전에 나섰다. 제일모직은 지난달 30일 긴급 IR을 열어 합병 무산 경우를 상정한 또다른 계획인 '플랜B'는 없음을 분명히 하고, 주주친화정책도 밝혔다.
또한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이날 인천 송도 본사에서 애널리스트와 기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IR을 갖는다.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도 합병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코멘트에 나서는 등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 사장은 이날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을 계속 설득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외국 투자자들을 설득하느라) 오랜만에 회의에 참석했는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외국에 계속 나갈 것"이라며 "소통을 강조하면서 주주들을 만나고 있고 특히 소액주주들에 대한 친화정책에 신경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리엇도 주총 전까지 공세를 이어갈 예정이다.
엘리엇은 주요 국가의 채권을 헐값에 인수한 뒤 각종 소송과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원리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벌처펀드로 유명하다. 첫번째 가처분 신청에선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소송전을 계속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은 오는 3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의결권 자문 전문회사 ISS의 의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국계 투자자나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일부 참고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