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연극 '나와 할아버지' 민준호 "일상은 소소하고 극적"

지난 25일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민준호(38)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대표는 또 울었다.

자신이 작·연출을 맡은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서 작가 역으로 무대에 올라 막판에 할아버지를 떠올리다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작가 역을 맡았던 배우가 개인 사정으로 작품에서 빠진 뒤 그를 대신에 직접 무대에 올랐다 올해도 출연하게 됐다.

 '나와 할아버지'는 멜로드라마를 쓰고 싶은 공연대본작가 '준희'가 외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 나서는데 동행하는 이야기다. 준희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할아버지의 과거 또는 청춘을 30년 만에 알게 된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수필극 형태인데 극에서 자연스레 풍기는 애틋함으로 먹먹한 여운을 안긴다.

민준호의 실제 경험담이 바탕이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서 작가 역으로 무대 위에서 다시 풀어내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진심이 담겼으니 관객들에게도 당연히 통한다. 이날 관객들도 민준호와 함께 훌쩍였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작품은 이처럼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든다. '유도소년' '뜨거운 여름'도 그랬다.

당일 공연이 끝난 뒤 대학로에서 만난 민준호는 "단원들이 놀려서 울려고 하지 않는데…"라며 웃었다. 민준호가 작가 역을 맡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무대에 오른 자신을 응원하려고 찾아온 지인들과 술자리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그는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연극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수필극 형태의 작품인데 작품 성향 자체도 수필이다. 2013년 초연한 이후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인데 담백한 수필처럼 질리지가 않는다.

 "과도한 극적 구성이 없어요. 감동시키려고 억지로 플롯을 만드는 것에 싫증이 났죠. 부러 어떤 부분에 힘을 주거나 빼기 보다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조명도 그냥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등 욕심을 버렸죠. 그러다 보니 깨닫는 게 많더라고요. 작품 자체도 깨닫는 이야기고요(웃음)."

-극에서 준희가 자신의 선생을 찾아가 상담하는 부분이 나온다. 실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스승으로 모신 이상우 연출이 모델인 것으로 안다. 작품 제목도 이 연출이 지어준 것으로 아는데.

 "보시고 나서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난 박치기를 하는데 그건 왜 넣지 않았냐'고 하셔서 박치기 장면을 넣었죠(웃음)."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극작, 연출을 맡은 대표가 배우로 선다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한다.

 "제가 연출로서 폼새가 없어요. 리허설도 잘 안하고(웃음). 아울러 배우가 연출처럼 있으면 가식적일 수 있어 그냥 내려놓으려고 해요."

-외할머니 방에 있는 액자의 외할아버지·외할머니 결혼사진이 외손주 등 수많은 다른 사진으로 가려져 있는, 평범할 수도 있는 부분에서 감동의 여운을 끄집어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두 분의 결혼사진은 외할아버지가 전쟁 통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기 전의 모습이다. 수많은 사진으로 가려져 있는 건 그 때 추억을 잊고자 한 것(외할아버지) 또는 가린 것(외할머니)으로 해석됐다. 두 분이 애정을 여전히 품고 있으면서도 아옹다옹할 수밖에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은유적으로 참 그렇죠. 부부가 사랑함에도 싸우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표면적으로는 준희가 외할아버지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인데 곳곳에 '글쓰기'에 대한 은유가 넘친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나중에서야 듣게 되는 것도 그렇고 극 중 스승이 '네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결국 작가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또는 글 쓰는 것에 대해 자각하는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더라.

 "의도한 것이 아니었어요. 저도 써놓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은유로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글 쓰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서, 만약 그런 걸 노리고 썼다면 안톤 체홉이죠(웃음). 앞으로 '나와 할아버지' 이하로 글을 쓰지 말자는 마음은 있어요. 특히 이상우 선생님이 말씀 해주신 '네 이야기를 먼저 써라'를 명심하고 있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일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싶어요. 특히 일상은 그 자체로 양극성을 다 갖고 있어요. 극적이면서도 소소하죠. 그건 쓰고 나서 깨달아야 해요. '나와 할아버지'는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은 제게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을 준 작품이에요."

-극 중에서 운전을 늦게 배운 준희가 내비게이션 보고 길을 가다 나중에 이 장치를 끄고 달리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이더라.

 "저 역시 운전을 서른 넘어서 배웠어요. 내비게이션 속 길 안내가 제일 빠르다고 생각한거죠. (내비게이션 속 길 안내처럼) 빨리 배워서 가는 것보다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빠르기보다는 인간적인 그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더 재미있잖아요."

-애드리브처럼 속사포 같이 쏟아지는 배우 대사들이 계속 겹친다.

 "저는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꼭 대사가 오버랩(겹치는 것)이 돼야 한다고요. 번역극은 한 인물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또 다른 인물이 이야기하는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각자 주관이 있고 욕심이 있다 보니 빨리 말을 내뱉게 되고 그러면 대화가 겹치는 게 당연하죠. 수필극이니 '나와 할아버지'에서도 그랬으면 했죠. 배우들에게도 그랬어요. 상대 배우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은 것 같으면 바로 자신의 대사를 치라고요."

-'빨갱이'라면 무서워하다가 옛 인연인 줄 알고 찾아간 할머니 앞에서는 전쟁 통에서는 그럴 수(좌우를 오갈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당대 아이러니한 정치 상황이 자연스레 보이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도 극의 막바지에 뉴스를 통해서 나온다.

-외할아버지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대로 공감했으면 했어요. 정치적인 옳고 그름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에요.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치사하지는 말았으면 했죠. 이야기를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순간 순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받아들이셨으면 했어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지난해 10주년이었다. 뮤지컬 '빨래' 팀과 극단 청국장의 연극 '춘천 거기'도 올해 10주년인데 꿈 많던 젊은 연극인들이 이제 대학로를 이끄는 허리가 됐다. (민준호 연출과 '빨래'의 추민주 연출은 한예종 99학번 동기로 민준호는 '빨래'의 첫 '솔롱고'를 맡기도 했다.)

 "그 10주년이 그냥 맞는 게 아니라 고생, 고생을 해서 10주년이에요(웃음). 저절로 됐다기보다는 다들 잘 버텨줬구나라는 의미에서 고맙죠. 연기로 먹고 살고 싶어요. 저희 작업 형태는 순수하지 않아요. 대신 그 연극을 대하는 정신은 순수하죠. 친구들과 잘 놀고 잘 먹고 싶어 연극을 하는 건데 이것을 하고 싶으면서 잘 살고 싶죠. 치열하게 돈을 벌면서 자존심은 지키는 일을 찾아야 하죠. 저희는 '예술을 한다'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어요. 재미있고 혁명적인 일을 하고 싶은 거죠. 새로운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하지, 예술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러면 자만심이 생기고 창피 할 것 같아서(웃음). 그냥 좋아서 하는 거고 뻐기고 싶지 않은 거죠. 스타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자체가 좋고 즐기는 일종의 '순수한 변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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