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경숙 표절 논란…전문가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 필요"

소설가 신경숙(52·사진)이 표절 파문과 관련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소설을 작품 목록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표절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을 믿을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애매한 해명을 내놓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신경숙은 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자신의 단편소설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이 문제를 제기한 문학인을 비롯해 제 주변의 모든 분들, 무엇보다 제 소설을 읽었던 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모든 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제 탓"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숙은 또 "출판사와 상의해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작품 활동은 계속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표절 기준을 메뉴얼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표절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전에는 성희롱에 대한 정의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그 기준이 확립됐고 교육도 한다. 표절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두 문장을 연달아 베끼면 표절이라든지, 이번 기회에 소설과 수필 등 장르별로 어느 정도가 표절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전반적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약하다"며 "투명사회를 만들고 후세를 위해서라도 표절을 엄벌해야 한다. 출판사가 신경숙이 스타작가 반열에 오르니 옹호하기까지 한다. 출판사가 작가의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건설적인 긴장 관계가 돼야 하는데, 한 명이 너무 유명해지다보니 종속관계가 되어버리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 한국사회의 모든 병폐가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신경숙의 사과도 진정성이 부족했는데, 사실 표절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유야무야 봐주기가 없고, 표절로 걸리면 바로 아웃이다. 쉬쉬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표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이번 일은 신경숙 작가가 출판사와 상의해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는 것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며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 지금까지 문학계 내부는 물론이고, 문학에 관한 표절 판정은 기준이 마련된 적이 없었다. 작가의 양심에 맡겨놨는데, 그런 것이 도리어 표절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문제를 좀 더 크고 넓게 봐야 한다"며 "신경숙 작가 표절을 가능하게 했던 문단의 고질적인 문제도 수면 위로 끌어올려져야 문학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 신경숙이라는 유명 문인의 표절 의혹 하나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제2의 신경숙, 제3의 신경숙이 나오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45)은 지난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경숙은 17일 창작과비평 출판사에 보낸 메일을 통해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며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날 창비 문학출판부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센 비판에 휩싸이자 창비는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하는 내용의 입장글을 18일 오후 발표했다. 같은날 고려대 교수를 지낸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경숙을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이번 표절 논란은 문학계 바깥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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