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거액을 들여 인수한 포스코플랜텍이 그룹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올랐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취임 이후 포스코가 '비핵심자산 매각'과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 계열사에 막대한 자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3일 포스코는 포스코건설과 함께 전날 이사회를 통해 자금난에 빠져 부도 위기에 처한 포스코플랜텍에 2900억원을 현금을 투입, 보통주 9965만6350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배정대상과 금액은 포스코가 2386억원, 포스코건설이 514억원 등이다.
포스코는 이번 유상증자 결정과 관련, "포스코플랜텍 임직원, 지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주변에선 하지만 포스코플랜텍의 부실한 자구계획안을 꼽으며, 그룹 전체의 '재무적 암초'로 지목하고 있다.
포스코플랜텍은 지난해 7월 계열사 성진지오텍을 흡수합병한 업체로, 고중량 에너지 플랜트 모듈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해양플랜트와 화공플랜트 양쪽을 아우르는 종합 플랜트 회사다.
포스코플랜텍의 한 축인 성진지오텍은 지난 2010년 3월 포스코에 인수합병(M&A) 당시부터 시끄러운 잡음을 일으키며 시장에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재임 당시 포스코는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던 성진지오텍의 지분 40.38%를 1593억원에 인수했다. 미래에셋펀드가 보유한 794만5110주와 당시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 보유지분 440만주 등 총 1234만5110주다.
◇누적되는 적자…부실 계열사 '오명'
문제는 포스코가 인수할 당시 이미 성진지오텍이 악명 높은 부실기업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성진지오텍은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2008년 리먼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 한 때 부채비율이 9만7500%까지 치솟기도 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M&A 시장에서는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 결정을 놓고 'MB정부의 실세가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아래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성진지오텍은 포스코가 인수하면서 한 때 부실기업 꼬리표를 떼는 듯 했다. 국내 대표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계열사로서 자원 개발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앞둔 대우인터내셔널과 플랜트 전문기업 성진지오텍이 원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글로벌 조선시황 악화에 맞물리면서 성진지오텍은 수주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손실이 눈덩이 처럼 커졌다.
포스코플랜텍의 당기순손실 규모는 ▲2010년 118억원 ▲2011년 562억 ▲2012년 324억원 ▲지난해 995억원이다. 올해 3분기말 현재 포스코플랜텍은 벌써 10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부채비율도 ▲2010년 313.9% ▲2011년 552.8% ▲2012년 479.4% ▲지난해 565.2%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올해 3분기말 기준 포스코플랜텍의 부채비율은 736.6%까지 치솟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포스코, 부실 계열사에 5년간 4305억 태워
성진지오텍은 포스코에 인수된 이후는 물론 지난해 7월 포스코플랜텍에 흡수합병된 뒤에도 적자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흡수합병 기업인 포스코플랜텍의 자금난까지 야기하며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셈이지만 시장의 의혹과 기업 부실 우려에도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지원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 5년간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에 투입된 자금은 인수대금 1600억원, 유상증자 참여 4305억원 등 6000억원 가량에 달한다.
성진지오텍에 대한 자금지원은 ▲지난 2010년 포스코건설 800억원(주당 1만6500원, 484만8400주) ▲지난 2013년 12월 포스코 289억원(주당 5280원, 548만1765주), 포스코건설 62억원 (주당 5280원, 118만0344주) 등 총 351억원에 달했다.
올해부터는 자금이 더욱 빠른 속도로 빨려들어가는 모습. ▲지난 3월 포스코 209억원(주당 3790원, 1894만주), 포스코건설 45억원(주당 3790원, 118만5310주) 등 254억원에 이어 ▲12월23일 29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포스코측은 부실 기업에 대한 '묻지마식 투자'가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사회에서는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 및 '보유지분만큼만 책임지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날 밤 늦은 시간까지 이사회를 열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와 포스코플랜텍 임직원, 지역 경제 등을 감안해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포스코플랜텍 "아직 자구 계획 없다"…포스코, 재무구조 개선작업 어디로
포스코플랜텍은 구체적인 자구계획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포스코플랜텍은 지난 9월 업황 악화와 업계의 경쟁 치열이라는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조선·해양 분야 수주 활동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저가 수주를 넘어서 마이너스 수주를 감내하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최후의 결단이다. 이와 함께 비핵심 자산 매각, 인력 구조조정 등 원가 절감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경영 정상화 계획 마련에 진척이 없다.
포스코플랜택 관계자는 추진 중인 경영정상화 계획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하게 논의된 것은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는 "본업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인력 조정 계획도 현재로선 없다"고 밝혀 사실상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포스코와 포스코건설에서 지원한 자금도 단순 부채 상환에 쓰일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플랜텍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부채비율이 높다보니 여러가지 갚아야할 빚이 많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밑빠진 독에 물 붓기'하는 꼴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포스코는 부실 계열사에 들어가는 현금 증가로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부담이 실리게 됐다. 올해 권오준 회장 취임 일성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제시하며 비핵심 자산 매각을 지속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매각이 확정된 것은 없다.
오히려 포스코에너지가 동양파워를 인수하기 위해 4311억원을 투자, '돈 들어올 데는 없는 데 돈 나갈 데만 자꾸 생기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플랜텍은 해양플랜트 등 적자 사업을 접고, 본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화공 플랜트 분야 위주로 사업을 개편하고 구조조정 등 경영정상화를 조기에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