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 직불, 전자자금이체 사업은 물처럼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하지만 선불, 직불, 전자자금이체 등에 대한 규제가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시장의 흐름을 갈라 놓는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페이팔 같은 외국업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회사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내의 한 결제대행업체 대표는 모바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규제가 모바일 금융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발목이 묶여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외국기업에 국내 시장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운용체체(OS)분야에서는 애플과 구글이, 사회관계망(SNS)분야에서는 페이스북과 탄센트가, 유통분야에서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모바일 금융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은 2011년 근거리무선통신망(NFC) 기능이 내장된 스마트폰을 선불카드처럼 쓸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 '구글월렛'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해에는 G메일을 활용한 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전자화폐 취급기관으로 승인을 얻은 후 유럽 전역에서 금융서비스를 선보일 방침이다. 금융분야의 '모바일 빅뱅(Big Bang)'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모바일 금융산업은 '갈라파고스' 신세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4%로 제한하는 금산분리법과 전자금융감독규정 등에 따라 IT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네이버, 다음카카오, 삼성전자 등은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 은행, 카드사 등과의 제휴를 통해 우회 진출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지난 9월 LG CNS와 협력해 카카오톡 기반의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를 선보인 데 이어 11일 카카오톡을 통해 송금·결제를 할 수 있는 '뱅크월렛카카오'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옐로페이와 함께 삼성월렛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송금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삼성월렛에 로그인한 후 옐로페이 앱과 연동해 상대방의 휴대폰 번호와 이름을 입력하고 송금하는 방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는 일본에서 먼저 '라인페이'를 선보였다. 라인앱을 통해 상대방의 은행 계좌를 몰라도 친구의 라인페이 계좌로 송금할 수 있고, 친구는 돈을 받자마자 출금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NHN엔터테인먼트가 지난 9월 한국사이버결제(KCP)를 인수, 시장 진출을 추진중이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우리의 서비스는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것 같다. 계속 상황은 변하고, 사용자들의 요구도 변하기 때문에 늘 서비스를 진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윤호 한국사이버결제 대표는 "현재는 금융당국의 보안성 심의 등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전자금융 활성화'와 '소비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금융당국은 사전규제를 완화하되 사후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IT·금융 민관협력체의 건의와 연구용역 등을 통해 내년 초 'IT·금융 융합 지원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율성을 높여 기술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IT·금융 민관협력체를 구성하고, 정부는 직접 규제가 아니라 간접규제를 통해 사후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업계에 자율성을 주는 대신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금산분리'나 '금융실명제' 문제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수정할 수 있는 만큼 일단 미뤄둘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산분리나 금융실명제는 국회의 입법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 만큼 금융위가 나서서 해결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계 일부에서는 정부가 모바일금융 활성화를 위해 규제시스템 개선과 함께 '금산분리', '금융실명제' 등에 대한 수정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영환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한국의 규제 수준은 세월호 사태가 벌어지니 수학여행을 금지하고,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가 나니 텔레마케팅을 금지하는 식"이라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금산분리법인데 이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지대 경영학과 문종진 교수는 "과거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금산분리, 금융실명제 등 몇 십년 전 논리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며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 등 다른 방법으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막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