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상계좌 98만여개를 만들어 이 중 일부를 인터넷 도박 사이트나 보이스피싱 조직 등 범죄 집단에 팔아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가상계좌를 인터넷 도박 사이트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 집단에 제공해 불법거래를 발생시키고, 입출금 거래 수수료 명목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홍모(37)씨와 이모(52)씨 등 3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 9월 가상계좌를 이용한 회원 포인트 적립사업을 하던 중 사업이 부진하자, 지난 4월부터 도박 사이트 운영자 등 범죄 집단에 가상계좌를 제공하고 입출금 수수료 명목으로 15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가상계좌가 금융실명제법의 적용이 쉽지 않아 추적이 어렵고 필요할 때마다 계좌를 바꿔가며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용, 자금 세탁 및 자금 은닉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5만여 개의 가상계좌를 범죄 집단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판매점과 가맹점을 하위에 두고 음성적으로 가상계좌를 판매하는 등 다단계 방식에 의해 철저히 분업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예를 들어 도박 사이트 이용자가 가상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홍씨의 모(母)계좌로 돈이 들어온다. 이 돈은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건네지고, 이 중 일부를 수수료로 홍씨가 챙기는 방식이다.
도박 사이트 이용자가 출금을 원할 경우에는 홍씨의 또 다른 통장을 이용해 돈을 건네주면서 또 다시 수수료를 챙겼다. 불법거래였기에 때문에 도박 사이트 운영자도, 이용자도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방법으로 홍씨 등은 약 4개월 동안 2조원 상당의 불법거래를 발생시켰으며, 수수료로 챙긴 금액만 무려 15억 원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제공된 가상계좌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뿐만 아니라 다단계 사기, 인터넷 물품사기, 조건만남 사기 등 범죄에 사용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범죄에 제공한 가상계좌만 206건이나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 사건은 대포통장의 양도·양수 행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가상계좌를 활용한 사례로, 임금의 편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불법거래 용도로 활용된 것"이라며 "방치 시 유사행위가 급속히 확산될 우려가 있어 신속히 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은 2조 원가량의 불법금융거래가 발생했음에도 상위 감독기관에 보고하지 않은 시중은행 3곳을 상대로 범죄 가담여부와 가상계좌 심사 불법여부 등을 추가 수사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은행 통장에서 2조원 가까운 거래가 발생할 경우, 시중은행들은 상위 감독기관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며 “시중은행도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금융위·금감원 등 유관기관과 법령 보완 및 제도 개선 등 후속조치를 협의하는 한편 향후 가상계좌를 활용한 범죄행위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