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물건 많으니 상담부터 받고 가요. 내가 들고 있는 물건만 10개가 넘어요. 단속 안해요. 내가 몇 건을 해줬는데. 다들 걱정안하고 살아요."
지난 18일 뉴시스 취재팀이 만난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 10년 공공임대아파트 인근 부동산중개업자가 전대·전매 희망자 10여명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흔들어 보이며 꺼낸 말이다.
2011년 입주한 이 단지는 정식 임차인이 아니면 세를 얻거나 매매할 수 없다. 당연히 중개 물건이 없을 텐데도 중개업소가 2곳이나 됐다.
공공임대아파트는 근무, 생업 질병치료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의무 임대기간(10년) 동안 되팔거나(전매), 다른 사람에게 재임대(전대)할 수 없다. 적발되면 임차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매수자와 매도자, 중개업자 모두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인근 중개업소 모두 단속을 걱정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파주에서 불법 전매·전대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적발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 이유다. 매도인과 매수인만 입을 맞추면 안전하다는 설명.
A부동산 관계자가 명함을 집어주며 건네는 말.
"깨끗한 물건(합법 전대·전매가 가능한 물건)은 비싸다. 아직 (의무임대기간이) 남은 것은 많다. 이 물건도 찾는 사람이 많아 전매하려면 전용면적 84㎡ 기준 웃돈을 1000만~3000만원 줘야한다. 금방 없어지니 서둘러야 한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전대가 성행하는 이유는 10년 공공임대 아파트가 인근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부동산경기가 다시 회복되고 있는 점도 이유 중 하나. 웃돈을 주더라도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있는 것.
10년 공공임대 맞은편 민영 아파트 전용면적 84㎡ 매매값이 2억1000만원, 전셋값이 1억4000만원을 호가하지만 이 단지 84㎡를 전매하면 임대보증금 7860만원에 1000만~3000만원만 웃돈을 붙여주면 된다. 전대는 임대보증금만 내면 된다. 인근 시세보다 절반 정도 싸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인근 B 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민영아파트 절반 값에 살 수 있는데 안사는 것이 손해다"며 "전입신고가 안 되는 등 몇 가지 불편한 것이 있지만 싸게 사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고 거래를 부추겼다.
현장에서 만난 C씨도 "불법인 줄 알지만 가격 메리트가 커 왔다. 남들도 다 한다고 안 걸린다는데 안할 이유가 없지 않나"고 말했다.
불법 전대·전매가 적발되면 임차권이 즉시 박탈된다.
더 큰 문제는 임대보증금 또는 매매대금을 보호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재임대가 금지된 만큼 전입신고가 불가능해 전세금에 대한 법적 구제방법이 없다. 매매도 소유권 등기가 안 되는 만큼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만난 중개업자들은 이행각서, 권리포기각서 등 이른바 '밑서류'로 불리는 서류들과 약속어음 공증, 근저당권 설정, 가압류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떼일 염려가 전혀 없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매도자와 매수자간 다툼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거래시점과 명의변경 시점 간에 차이 때문에 웃돈 규모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약과다. 매도인의 신용이 불량인 경우 임대보증금에 채권가압류, 압류추심이 들어와 전 재산을 날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인근 D 공인 관계자는 "물건을 찾아달라면 당장 10건도 보여줄 수 있다"면서 "불법 전대가 적발돼 내쫓긴 세입자, 불법 전매를 했다가 돈을 때인 매수자 등이 원 임차인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십수건이다. 동네가 시끄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임대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한마디로 "역부족이다"며 손을 들었다.
이 단지에서만 최근 1년간 26건을 적발했고 단지 내부에 '임대기간 종료전 전매와 전대(재임대)는 불법'이라는 안내문을 내거는 것은 물론 이사차량을 전수 점검까지 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LH 관계자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 등 일부 중개업자가 불법 전대·전매를 교묘히 부추기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며 "적발하더라도 벌금이 150만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공공임대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