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장거리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기적의 레이스'에 도전한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남자 5000m 은메달, 1만m 금메달을 따내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승훈은 이번에는 팀추월에서도 한국의 사상 첫 메달 획득에 앞장선다.
8세 때 스케이트를 신은 이승훈이 세계적인 빙속 장거리 선수로 거듭나기까지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승훈은 이력이 특이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09년까지는 쇼트트랙 선수였다. 2009년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해 3관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9·러시아·러시아명 빅토르 안)와 이호석(28·고양시청)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던 이승훈은 2009년 4월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종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스케이트를 신은 이승훈은 2009년 여름부터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고, 그 해 10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다는데 성공했다.
그는 2009~2010시즌 월드컵대회에서 잇달아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며 매서운 상승세를 자랑했다. 종목을 전향하기 전에도 강한 지구력을 자랑하던 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로 뛴 덕에 갖춘 뛰어난 코너링 능력을 앞세워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승훈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이승훈은 남자 5000m에서 6분16초95로 결승선을 통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만m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승훈은 12분58초55의 올림픽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이승훈의 기록은 2위에 해당됐지만 장거리 종목의 최강자 스벤 크라머(28·네덜란드)가 인코스에서 아웃코스로 바꾸지 않고 레이스를 해 실격당하면서 금메달은 이승훈의 차지가 됐다.
이승훈의 금메달은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불모지'에서 나온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장거리에서는 유럽 선수들을 좀처럼 제치지 못했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이승훈이 이런 종목에서 아시아 국가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었다.
이승훈은 이후에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선수로 활약했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5000m와 1만m,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목에 걸며 3관왕에 등극, 아시아 무대에서는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그 해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5000m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2011시즌부터 2013~2014시즌까지 월드컵 시리즈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 1개·은메달 1개·동메달 4개를 수확했다.
2011~2012시즌, 2012~2013시즌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이승훈은 올림픽을 앞둔 2013~2014시즌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올 시즌 월드컵 1차 대회 5000m에서 동메달을 딴 이승훈은 2, 3차 대회에서 입상에 실패해 주춤했으나 월드컵 4차 대회 5000m에서 3위를 차지하며 다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이승훈이 4년 만에 서는 올림픽 무대에서 1만m 2연패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최강자 크라머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크라머는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5000m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로, 최근 몇 년 동안 장거리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는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에서 6차례(2007~2010년·2012~2013년) 정상에 섰다.
크라머는 올 시즌 월드컵 1·2차 대회 5000m, 3차 대회 1만m에서 거푸 금메달을 수확하며 최강자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이승훈은 크라머와의 실력차를 인정하며 소치동계올림픽 개인종목 목표를 메달 획득으로 잡았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변수가 많은 만큼 금메달이 꿈만은 아니다.
이승훈이 개인 종목 메달과 함께 욕심을 내는 것은 팀추월이다. 이승훈은 김철민(22), 주형준(22·이상 한국체대)과 함께 팀추월에 나선다.
한국 팀추월대표팀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승훈은 "내가 크라머를 이기는 것보다 팀추월대표팀이 네덜란드를 제칠 가능성이 더 높다"며 희망을 그리고 있다.
이승훈과 함께 팀추월에 나서는 김철민과 주형준은 모두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들이다.
세 명 모두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어서 여러 명이 함께 빙판을 도는 것에 익숙하고, 호흡을 맞추는 것도 습관이 들어있다. 이것이 대표팀의 강점으로 작용, 개개인이 가진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올 시즌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한국대표팀은 4차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며 최강국 네덜란드를 위협했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충분히 메달을 노려볼 만하다.
이승훈이 팀추월에서도 메달을 목에 건다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뿐 아니라 팀추월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팀추월에서 아시아 국가가 메달을 딴 적은 한 번도 없다.
◇ 이승훈 프로필
▲생년월일·출신지 = 1988년 3월6일 서울
▲신체 = 177㎝ 70㎏
▲혈액형 = A형
▲취미 = 영화감상
▲출신교 = 리라초-신목중-신목고-한국체대
▲소속 = 대한항공
▲국제대회 주요 성적
△쇼트트랙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1000m 6위·1500m 3위·5000m 계주 2위·종합 5위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종합 5위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1000m 2위·1500m 3위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 1500m 4위·5000m 계주 1위·종합 4위
-2009년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1000m·1500m·3000m 1위
△스피드스케이팅(2009년 전향)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1만m 1위·5000m 2위·팀추월 5위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5000m·1만m·매스스타트 1위·팀추월 2위
-2011년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5000m 2위·1만m 4위
-2012년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종합 15위
-2012년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팀추월 7위
-2013년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5000m 8위·1만m 4위·팀추월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