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 갖은 역경을 딛고 한층 더 성숙해진 기성용(25·선더랜드)이 2014년 도약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기성용은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강희(55) 전 국가대표팀 감독(전북현대 감독)을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가 국민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의 영웅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사과문을 통해 잘못을 시인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악재는 한꺼번에 몰려왔다. 2012~2013시즌 스완지시티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캐피털원컵(리그컵) 우승을 이끌었던 기성용은 2013~2014시즌 개막과 함께 벤치 신세로 전락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국가대표와 소속팀에서 승승장구하던 기성용은 순식간에 '위기의 남자'가 됐다.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는 선더랜드로의 임대 이적을 선택했다. 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9월부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한 기성용은 특유의 안정감과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경기장 밖에서 흔들렸던 그는 경기장 안에서 다시 중심을 잡아나갔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이어지자 홍명보(45) 국가대표팀 감독도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10월 브라질·말리와의 2연속 평가전을 앞두고 기성용을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그가 합류하자 대표팀의 경기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과 접전을 벌인 끝에 0-2로 분패했고 이어진 말리전에서 3-1 완승을 거뒀다. 기성용의 역할이 컸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축구의 핵이었다.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기성용은 "경솔한 행동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경기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실수를 만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동료들도 기성용의 복귀를 반겼다. 손흥민(22·레버쿠젠)은 "(기)성용이형은 대표팀 미드필더의 핵심이다. 형의 합류로 팀 전력도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성용은 추락하던 롤러코스터를 멈춰 세우고 도약을 준비했다. 자신감이라는 특급 엔진을 장착한 그는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소속팀에서 풀타임 행진을 이어가던 기성용은 결실을 맺었다. 지난달 18일 첼시와의 2013~2014시즌 캐피털원컵 8강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2-1 역전승을 견인했다.
2012~2013시즌 스완지시티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 무대에 입성한 뒤 터뜨린 마수걸이 골이었다.
명장 조세 무리뉴(50) 첼시 감독은 "기성용은 선더랜드의 키 플레이어다"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기성용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 번 포문이 열리자 기성용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았다. 그는 지난달 26일 에버턴과의 2013~2014시즌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에서 직접 만들어낸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거스 포옛(47) 선더랜드 감독은 기성용의 원터치 패스·드리블·볼 관리 능력·양발 사용 등을 높게 평가하며 "기성용은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는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3년 하반기 기성용의 고공행진은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지난달 31일 공식 SNS계정을 통해 2013년 각종 통계자료를 발표를 했다. 이 통계자료에서 기성용은 2013년 프리미어리그 패스성공률 전체 1위(91.2%)·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 리그) 패스성공률 2위를 기록했다. 내로라하는 유럽 내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활약을 펼쳤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2014브라질월드컵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기성용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노리고 있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전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SNS파문을 통해 절치부심한 기성용은 '스포츠 스타'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축구선수'로 거듭났다. 마음고생을 하며 축구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그 결과 퇴보가 아닌 발전을 일궈냈다.
기성용은 "모든 초점은 6월에 맞춰져 있다.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대표팀이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팀 가운데 만만한 상대는 없다. 우리의 경기력을 최대한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전을 다짐했다.
타고난 재능 위에 재무장한 정신력까지 더한 기성용이 전 세계 축구 강호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굳게 닫힌 문을 열어 한국의 품에 승리를 안길 '중원의 키(Key)'가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