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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중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극에서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고, 남자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악녀는 늘 도도하고 세련된 얼굴의 여배우들이 도맡는다. 악녀는 이런 얼굴이어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큰 키에 늘씬한 몸, 갸름한 얼굴, 약간 올라간 큰 눈을 가진 김아중(33)은 일반적인 악역의 외모에 딱 들어맞음에도 한 번도 악역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일단 악역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심지어 최근 종영한 SBS TV 드라마 '펀치'(극본 박경수·연출 이명우, 김효언)에서는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나쁜 세력에 대항하는 '신하경' 검사 역을 맡았다.

박경수 작가는 악역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작가다. '추적자 THE CHASER'(2012)에서 돈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으려던 김상중이나 '황금의 제국'(2013)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고수가 그랬다. '펀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환'역을 맡은 김래원이나 검찰총장 '이태준'역의 조재현이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김아중은 박경수 작가의 악역이 욕심나지 않았을까.

 "박경수 작가님이 전작에서 선을 위한 캐릭터를 그려내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하셨어요. 이번에는 그런 역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게 하경이가 될 거라고 하셨죠. 하경이가 드라마의 시작을 열고, 하경이의 눈으로 시청자가 다른 역할들과 사건을 마주할 수 있게 화자가 돼 달라고요. 사건을 마무리 짓고 주제를 전달하는 인물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다만 지나치게 선한 역할에 시청자들이 거리감을 느낄까 걱정했다. 박 작가는 그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는 인물을 그리겠다고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김아중은 "작가님이 약속을 지켰다"며 만족해했다.

시청자와 신하경 간 거리를 조절하는 장치는 딸 '예린'이었다. 극 속에서 신하경은 예린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편이 예린을 미끼로 협박하면 금세 무너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평범한 엄마이기도 했다.

김아중은 '엄마'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냥 예린이 역을 맡은 지영이를 사랑했어요. 엄마가 돼 보지 못했는데 억지로 엄마연기를 한다고 그렇게 느껴질 것 같지 않았어요.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아가씨 때랑 똑같아요. 아이 엄마가 된다고 해서 매순간 아이만 생각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는 않잖아요. 일상을 같이 하는 동반자가 생기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순간순간 예린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

대신 '검사' 신하경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무엇인가 지키고 싶은 신념과 정의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목 위까지 올라오는 터틀넥을 주로 입었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니트 소재 의상과 소품을 활용했다. 똘똘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쪽 머리를 귀에 꼽았다. 모두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목폴라'를 색깔 별로 한 여섯 벌 사서 19회 내내 그것만 돌려 입었어요. 되도록 바지를 입었고요. 가방도 두, 세 개로 돌려 들고 신발은 하나만 신었어요. 작가, 감독님들이 드라마 취재차 여검사님들을 많이 만났는데 다들 너무 예쁘시더래요. 심지어 검찰 사내 방송에서 아나운서 하시는 분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많이 꾸미기도 하시고요. 그래도 시청자가 생각하는 검사의 이미지가 있으니까 보수적이고 수수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김아중은 "'펀치'를 통해 연기의 재미를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워낙 뛰어난 연기자들과 같이 작업하는 현장이었잖아요. 훌륭한 연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캐릭터를 다채롭게 해석하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다 주인공 하는 배우들이잖아요. 배우들끼리 서로 믿으면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책임지고. 설사 시청률이 안 나왔더라도 좋았을 거예요."

2011년 SBS TV 드라마 '싸인'에 이어 두 편째 묵직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밝고 통통 튀는 역을 해 보고 싶다는 그녀는 '김아중의 작품은 재밌다'는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를 좋아하실 수도 있고, 싫어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인간 김아중과 관계없이 김아중이 출연하는 작품은 볼 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앞으로 그런 믿음을 쌓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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