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 사상 처음으로 6회 연속 올림픽에 나서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대들보' 이규혁(35·서울시청)이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던 이규혁은 월드컵 대회에 전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라 생각하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이규혁은 후배들에게 쉽게 밀리지 않았다.
이규혁은 23~24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0회 전국남녀 스프린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총 144.385점을 획득, 모태범(24·대한항공·142.100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500m 1차 레이스에서 5위에 머물렀던 이규혁은 1000m 1차 레이스에서 1분11초48을 기록, 2위에 등극했다.
24일 벌어진 500m 2차 레이스에서 36초10으로 3위에 오른 이규혁은 1000m에서 1분12초71을 기록하고 4위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규혁은 "시즌 초반부터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현재 훈련 프로그램 같은 것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다"며 "이번 대회는 어느정도까지 갈 수 있느냐가 나에게는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태범이라는 최정상급 스케이터가 있어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지를 느낄 수 있었다"며 "1000m 2차 레이스에서는 모태범과 600m 지점까지 스피드 차이가 어느정도까지 나는지 척쨉� 원하는대로의 거리차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대회 같은 곳에서 같은 대회가 벌어졌을 때 마지막 한 바퀴를 내가 포기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거리였다"고 덧붙였다.
이미 지난 10월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시즌이 시작됐지만 이규혁에게 올림픽 시즌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솔직히 시즌 초반 좋지 않아 월드컵대회 디비전B에서 대회를 뛰었다. 좋지 않은 시간대에 관중도 없어 여건이 좋지 않았다"며 "이동이 많았는데 젊은 선수들에 비해 피로도를 많이 느꼈다. 제대로된 테스트를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규혁은 "의도한 부분도, 의도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나의 올림픽 시즌은 지금이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그가 올림픽 시즌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소치동계올림픽에 모든 힘을 쏟아붓기 위함이다.
이규혁은 "체력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다. 어린 선수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욕심이다. 한 번이라도 이길 상황을 만드려면 최대한 빼고 중요한 것만 취하자는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2위에 올라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얻은 이규혁이 대회에 출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는 내년 1월18~19일 일본 나가노에서 벌어진다. 내년 2월7일 개막하는 소치동계올림픽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져 이상화(24·서울시청)와 모태범(24·대한항공)은 불참할 전망이다.
이규혁은 "그 친구들과 나는 다르다. 그 친구들은 시즌을 시작한지 꽤 됐고, 저는 지금 시즌을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를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며 "아시아에서 대회를 하니 불리함도 없고, 좋은 연습이 될 수 있다. 마지막 모의고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이규혁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4년 전에는 항상 좋은 위치에서 올림픽을 준비하려고 했다"는 이규혁은 "현재는 (모)태범이와 차이가 크지만 한 번 주어질 기회를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며 웃었다.
이규혁은 "사실 6번째 올림픽이라고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신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서 잘하고 싶다. 올림픽 메달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부족함"이라며 "하지만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졌다고 화를 낼 수는 없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지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버텨나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소중한 기회를 앞두고 있지만 이규혁은 이전보다 여유를 가지고 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그는 "4년 전을 생각해보면 '내가 답답하게 지냈구나'라고 반성이 된다. 지금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도 여유롭다. 하지만 4년 전에는 1등인데도 조급했다. 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같은 마음으로 4년 전에 올림픽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규혁은 "현재의 상태가 부족함이 있지만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소치동계올림픽 목표를 묻자 "당연히 메달은 따고 싶다"고 말한 이규혁은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그것을 채워서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이전 5번의 올림픽에서 최상의 컨디션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50~60% 정도였다. 최고였다면 메달을 따지 않았겠나"라며 "이번에는 가지고 있는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위를 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올림픽을 하고 싶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끌어내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