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격 인상 조짐을 보이는 치킨업계에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원료비 상승을 반영했다기 보다는 '부당이득'을 취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불공정 거래행위를 한 업체에 대해서는 국세청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오는 15일 외식업중앙회, 프랜차이즈협회 등 외식업계 전문경영인(CEO)들을 불러 치킨 등 닭고기를 원료로 한 식품 가격이 인상되는 사례가 없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따른 닭고기 수급 불안을 기회로 가격을 인상하려는 시도를 막겠다는 의도다.
◇'하필 AI 터진 시점에'…괘씸죄
정부가 세무조사 '칼날'까지 휘두르기로 작심한 이유는 AI 파동을 틈타 치킨 프랜차이즈가 폭리, 부당이득, 가격담합행위 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업계 1위인 BBQ치킨은 오는 20일부터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 '황금올리브치킨'은 1마리 당 1만6000원에서 2000원이 오른 1만8000원으로, '황금올리브속안심'은 1만7000원에서 1000원이 오른 1만8000원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후라이드치킨이 이 정도 가격에 형성된다면 양념치킨이나 소스를 새로 개발한 신메뉴는 2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BBQ 측은 "지속적인 원부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상승, 배달 대행료 등 신규 비용이 발생해 어려움이 있었다"며 "가맹점의 요청을 받아들여 판매 가격을 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라는 점이다. AI로 국내산 육계 공급량이 줄었고 수입국인 미국에서도 AI가 발생해 수입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치킨 프랜차이즈는 AI와 무관하게 동일한 가격으로 닭고기를 공급받고 있는데 이 시점에 원료 가격 상승을 들어 판매가를 올리겠다는 것은 '부당 편승'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가격 인상의 첫 시도를 눈감으면 업계 다른 업체도 줄줄이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김상경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사기업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지만 AI 발생으로 인한 산지가격 상승을 이유로 드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며 "치킨업계는 생산업체와 공급가격 상·하한선을 미리 정해 연간 계약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 시점에 치킨 가격을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AI 발생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번 강경 대응은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조치 성격이 크다"고 밝혔다.
◇정부 강경 대응에 육계 산지 가격도 하락
AI로 인해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육계 가격이 실제로 오른 측면도 있지만 유통 과정에서의 매점매석도 가격 상승의 요인이다.
지난 계란 파동 때 갑자기 계란이 사라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정부가 미국산 계란을 들여오자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졌는데, 창고에 보관돼 있던 국내산 계란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정부가 이 같은 유통업체의 사재기 여부를 집중 단속하기로 하면서 닭고기 산지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닭고기 가격 인상 여부 확인을 위해 유통·위생실태와 판매가격, 구입가격, 판매량, 입고량, 재고량 등을 지방자치단체 및 식약처와 합동 점검하고 있다.
이에 2690원에 머물러 있던 육계 생계(소) 가격은 13일 7일만에 2590원으로 떨어졌다. 14일엔 이보다 100원 더 떨어진 2490원이 됐다.
물론 육계 가격이 아예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3월14일(1890원)과 비교하면 32% 가까이 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치킨업계에 강력 하게 대응하는 것은 1만8000원에 달하는 치킨 값에서 2000원 남짓한 생계 가격은 10% 내외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몸값이 비싼 톱스타를 CF모델로 기용해 수억원을 쓴다거나 새로운 홍보수단인 배달대행업체(배달의민족, 요기요 등)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최종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가격 상승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농축산물 사재기 단속, 사실상 어려워
이번엔 다행히 정부가 칼을 갈자 한국육계협회의 자율적인 가격 인하 노력으로 가격이 떨어지긴 했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 작정하고 사재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실상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농축수산물은 생육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에 비해 생산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정부는 일부 민감품목의 수급조절을 위해 일정 부분 재고를 보유하거나 수입관리를 통해 가격을 조절한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개입을 할 경우 농산물은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크기 때문에 자칫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다. 또 수입을 통해 수급 조절을 할 경우 수입산 농축수산물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우리 농가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가 크다.
김종구 농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덩치가 큰 기업의 경우 부당이익을 취했는지 여부를 비교적 확인하기 쉬우니 세무 조사를 하는 등 우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서도 "소규모 유통상들이 매점매석을 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적정한 수급조절대책과 수입관리가 가장 근본적 대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