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시즌이 돌아올 때면 국내 기업들에 맹비난이 쏟아진다. 이익이 많이 났음에도 배당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요즘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처가 마땅치 않을 경우에는 이런 불만이 쇄도하기 마련이다.
실제 통계를 통해서도 국내 기업들의 배당이 얼마나 짠 지 나타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 인터내셔널) 기준 전 세계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액)은 평균 40.1%다. 그에 반해 국내 기업들은 절반 수준도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문제는 비단 이번에만 쟁점화 된 건 아니다. 업계에선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지만 아직도 기대 수준에 턱없이 모자르다고 한 목소리를 내왔다.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데 배당을 실시하는 주체인 기업만 비판할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배당을 실시하는 기업과 더 많은 배당을 원하는 기관과 소액 등 투자자들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주주환원’의 높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것이 곧 투자의 확대와 이익의 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선순환 구조가 있는 데도 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까. 이에 대해선 주주환원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아 온 기업들의 책임이 크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정재규 박사는 "해외 기업의 경우 수익을 내면 주주환원 차원에서 투자자들에게 배당으로 돌려준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대기업의 상장사는 배당성향이 너무 낮아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기업이 향후 투자를 통해 더 큰 성과를 내 더 많은 배당을 하려고 한다면 그런 비전들을 주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들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이 안 되고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국내 자본시장에서 오너가 경영을 맡고 있는 곳에서 소액 주주의 배려가 적었던 것"이라며 "주주가 이사회 결정전에는 배당 청구권을 행사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이 안 되고 있는 데다 주주 중시 경영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소위 대기업이 취하고 있는 투명하지 못한 현 지배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박사는 "지배주주인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배당을 통해서 전체 주주에게 이익을 고르게 배분하는 것보다 배당 이외에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편취가 낫다고 보는 것이다.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이 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자본시장실장 역시 "현금을 자신들의 컨트롤 범위 안에 쌓아두는 것을 선호해 왔던 탓에 오너 일가들이 배당에 인색했다"이라며 "배당을 받게 되면 부과되는 세금을 내야하는 데다 지배주주의 경우 배당이 아니더라도 자금 사용 방향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에 배당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배당 확대의 요체는 지배구조 개선에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아울러 투자자들도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 내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실질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국민연금 등 거대 기관투자자인 연기금이 목소리를 낸다거나 주총에서 목소리를 내면 가능하다.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와 더 나아가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도록 압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고 주장했다.
또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에 압력을 넣을 수 있도록 소액주주가 사외이사에 진출해 이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실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해외의 경우에는 문화 자체가 기관투자자들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배당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에 배당을 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도 중요한 운용 방식이란 인식이 생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가이드라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국민연금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펀드 등 다른 기관투자가에게 확대될 수 있다"고 낙관론을 펼쳤다.
배당은 각 기업마다 또 산업마다 자체적인 경영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업의 변화가 최우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기업이 스스로 바꿀 의지가 없다면 그들이 바뀔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정 박사는 "배당에 대한 결정권은 경영진에게 있는 것이다. 경영의 책임성이라는 것이 올바로 작동해야 하는데 아직껏 우리 사회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오너 창업자 회사의 경우에는 망할 때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정 박사는 기업들이 바꿀 의지가 없다면 의지를 갖게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방법은 ▲전문경영인(CEO) 시장 확대 ▲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 등이다.
그는 "책임경영의 기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성과가 좋지 않을 때 CEO를 교체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조성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CEO 인력 풀이 많아야 한다"라며 "아울러 M&A 시장이 활성화 돼 지배주주가 경영을 제대로 못할 경우 자신들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마지막으로 "배당이 점차 늘어나면 현재와 같은 저금리 기조에선 단기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의 성향이 장기투자로 바뀌어 갈 것"이라며 "주식에 대한 장기투자로 기업들의 투자자산이 늘어나고 기업은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 상승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