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주도' 한계 기업 구조조정 가능할까

  • 등록 2015.10.18 10: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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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 받고 팔수 있는 매물 많지 많아 시장에 의한 신속 구조조정 어려워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내년 초부터 한계·부실 우려가 있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각 부처 차관급 및 국책은행까지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하지만 IMF 직후 처럼 정부가 강압적으로 각 기업들의 빅딜을 요구하거나, 한계기업을 퇴출시키는 방식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즉 "그간 채권은행이 주도해 오던 구조조정을 시장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시장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란 사모펀드(PEF) 매각이나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기업의 부실 위험을 줄여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18일 국내 금융전문가들이 내놓은 의견은 지금의 현실에서 '시장주도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18년 전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업간 빅딜을 주문하는 강압적인 방식은 안되겠지만,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면서 판을 짜되, 시장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구체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격'이 관건…시장 형성 안될 듯

 최근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사례 중 성공적인 '시장형 구조조정'으로 꼽히는 경우는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의 '빅딜'뿐이다.

두 그룹사가 각각 주력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매각을 추진해 나간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시장 주도형 구조조정의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이 '가격'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적정한 가격이 형성돼야 매도와 매수 희망을 모두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기업 환경에서는 구조조정을 위한 가격 형성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과거보다 기업들이 덩치가 커진 탓에 매각가는 상승했지만 경기가 악화되면서 제시된 가격을 수용할 수 있는 매수희망자는 줄었기 때문이다. 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기술 경쟁력이 약화돼 매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점도 문제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가격만 맞춰지면 시장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가능하다"며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떤 대기업 그룹사에서 큰 규모의 사업을 판다고 내놨을 때, 제시한 가격에 살 여력이 있는 기업이 국내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잘 정리해서 제 값 받고 팔 수 있는 좋은 매물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실상 아예 청산돼야 하는 한계기업이 많지만 시장형 구조조정의 대표주자인 PEF는 청산을 담당하지 않아 참여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한계적"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과 구조조정 기관에 대한 낮은 신뢰도도 시장 주도형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지적됐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는 인수합병(M&A) 기능의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있지 않은데다 통합도산법을 운용하는 법원의 능력에 대한 신뢰성도 충분치 않다"며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시장과 법원에 의한 조속한 구조조정이 사실상 우리나라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 이끌고 '시장' 보조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전문가들은 결국 국내 환경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고 시장이 보조하는 투 트랙 구조조정만이 현실성 있는 답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려주면서 시장의 효율성을 살려줄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 주도로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정리해가면서 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관이 함께 협력해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는 정부가 주도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떻게든 먼저 발을 빼려는 기관이 많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되지 않는다"며 "문 닫아야하는 회사는 문닫을 수 있도록 정부가 결단을 내리고 민간자본으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업은 PEF나 M&A 시장에 맡기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업종·기업 규모 별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디부터 구조조정을 어떻게 시작해나갈지는 정부가 정해줘야 한다"며 "또 시장의 역할이 잘 수행되도록 구조조정 장치에 제도적인 보완을 더해주는 한편, 캐피탈이나 여신전문금융사 등 소규모 금융사를 투입해 자본시장의 밑바닥부터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사실상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은 채권금융기관에 의존하는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라며 "정부의 역할은 이제 시장의 역할과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주고 이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채권금융 기관을 압박해서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도 불가능하지만, 정부가 손을 뗀다고 구조조정이 시장의 순리대로 진행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며 "시장이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부는 선을 그어주고 시장의 역할이 유지되도록 일관성을 지켜주는 게 차선"이라고 덧붙였다.



조종림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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