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침체 트라우마에 빠진 한국경제

  • 등록 2015.04.09 09: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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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여파로 작년 2분기 성장률 0.5%로 급락

"온 나라가 씻김굿이라도 한판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정부 당국자)"

세월호 참사가 한국 경제에 남긴 상흔은 깊다. 작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현장을 지켜본 국민들은 집단 트라우마에 빠져 들었다. 사고 이후 울릉도, 죽도 등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파르게 줄었고, 정부 청사 주변 상인들도 발길이 뜸해진 공무원들 탓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을 삼킨 맹골 수로는 그 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작년 2분기 경제성장률은 0.5%로 '털썩' 주저앉았다. 전분기 대비 반토막이 난 것이다. 전국이 애도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덜 먹고 덜 쓴 결과다. 요식업,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 3분기(0.8%) 반짝 상승했던 성장률은 4분기(0.3%) 다시 곤두박질쳤다.

잔인한 4월을 다시 맞은 한국경제는 '내우외환'에 휘청이고 있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1분기 1.1% ▲2분기 0.5% ▲3분기 0.8% ▲4분기 0.3%로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뒷걸음질 친 이면에는 세월호 충격과 흔들리는 소비가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철옹성 같던 백화점의 풍경도 바꾸었다. 3일 올해 첫 세일을 시작한 국내 백화점들은 품목 대부분을 신상품이나 고가 제품들로 구성했다. 재고 물품을 처리하기 위해 대형전시장을 임대해 '땡처리'에도 나섰다. 올 1∼2월 백화점 전체 판매액은 작년 동기보다 1.4% 감소했고, 대형마트 등 소매업 판매액은 3300억원 가량 줄었다. 

소비자 심리지수는 백화점이 고전하는 배경을 가늠케 한다. 소비자 심리 지수는 올 들어 1~2월 반짝 상승했으나, 3월(101) 다시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작년 5월 105를 기록한 이후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작년 8월(106), 9월(107) 2개월 연속 상승하기도 했으나, 좀처럼 참사 이전 수준(108)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참사의 후폭풍이 얼마나 강력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시들어가는 소비를 되살릴 뾰족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1~2월 54조8000억원을 앞당겨 풀어 경기 부양의 군불을 때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주택매매 증가 등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어도 소비가 다시 살아나는 신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소비 부진은 한 번 고착화되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20년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이 반면교사다. 아베 정부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그 전까지 백약이 무효였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막대한 정부 재정을 쏟아 붓고도 디플레이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오랜 불황에 지친 일본 소비자들의 뇌리 속에 이미 디플레 기대 심리가 깊숙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경제가 세월호 참사 이후 갈수록 일본과 닮아가고 있다는 진단도 고개를 든다. 정부가 지난해 8월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도 '소비가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라는 위기 의식의 발로다. 소비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여전히 50%가 넘는 게 현실이다. 

소비 부진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수출이 흔들리는 가운데 소비마저 부진하면 올해 성장률은 가파르게 하락할 수 있다. 대중 수출은 올해 2월 40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4% 줄어 들었다. 지난해 대중 수출액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9년 이후 5년 만에 감소했다. 올 들어서도 이러한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본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수출보다 내수, 그 중에서도 소비가 경기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성장, 물가가 전망치를 상당 폭 하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악재에 짓눌려온 소비가 성장을 제약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정책 당국이 저성장의 덫에 걸린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국들은 ▲청년 실업 ▲생산가능인구 감소 ▲고령사회 도래 ▲중국경제 성장속도의 둔화 등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조종림 kimm1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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