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총망라한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자료)'가 안보 현안 조율에 막혀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관세협상 세부 사항을 확정할 양해각서(MOU) 체결도 함께 밀리면서 자동차 및 상호관세 인하 시점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11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관세·안보 분야 협력 내용을 팩트시트에 담기 위해 막바지 조율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팩트시트 공개 시기를 지난 주말 목표로 잡았다가 시점을 늦췄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9일 "금명간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날짜는 제시하지 않았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언제 마무리될 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실도 당초 지난주 발표를 예상했지만 최근엔 입장을 선회해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간 팩트시트 문안 중 관세 분야는 대부분 합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안보 분야와 관련해 미국 내 관계 부처 간 이견 조율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내부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으로 문서 확정 일정이 밀린 것으로 보인다.
협상 문안이 확정되지 않으면서 관세 인하 시점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음에도 세부 협의에만 3개월이 소요됐고 현재까지도 실제 발효는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팩트시트가 확정돼야 MOU가 체결되고, 관세 인하 시점을 구체적으로 못 박을 수 있다. 팩트시트엔 한미 양국이 협의한 주요 합의 사항이 담기고, MOU에는 관세 인하와 대미 금융패키지 등의 내용들이 명시될 예정이다.
앞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국별 관세 및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약속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금융패키지 조성을 제시한 바 있다.
주요국의 사례를 감안하면 팩트시트를 통해 관세 인하 시점이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EU)은 팩트시트만으로 관세협상을 마무리했고, 일본은 팩트시트에 더해 MOU를 체결했다. 우리 정부 역시 일본 사례처럼 협상 세부 내용을 담은 MOU를 통해 절차를 확정 지을 방침이다.
일본은 상호관세와 관련해 미국 측에 8월 7일을 기준으로 소급 환급을 요구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우리 정부도 일본과 동일한 기준일 적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 8월 7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EU 등에 상호관세를 공식 발효한 바 있다.
정부는 자동차 관세의 경우 법안이 제출되는 달의 1일 소급 발효되도록 협의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빠르면 이번 달, 늦어도 다음 달부터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9월 16일 행정명령 발효와 동시에 관세 인하율을 적용했다.
반면 반도체 관세는 구체적인 수준이 담기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 미국의 반도체 품목별 관세가 발표되지 않아서다.
이번 협상을 통해 우리나라 반도체 품목 관세는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에서 정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최근 엑스(X·옛 트위터) 게시글에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혼선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상당국은 팩트시트가 마련되면 신속하게 한미 간 MOU를 체결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MOU는 서명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시차가 있을 수도 있다"며 "그 시차가 길지는 않을 거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