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강국인 이란은 성장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시장이다.
중동 최대 규모인 8000만 인구 뿐 만이 아니다.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외자 사업에 대해서도 100%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있어 이란 진출의 매력은 상당하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재가 이뤄졌던 기간에도 한국산 휴대폰이나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소비재 수출이 간접적으로 이뤄져왔고, 현지 점유율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한국에 매우 친숙한 시장이라는 장점도 있다.
미국은 지난 2010년 포괄적 이란제재법(CISADA; H.R.2194)을 발표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에도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시행, 사실상 이란의 수출입을 봉쇄했다.
이후 수년간 핵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란은 국제 경제에서 외딴 섬과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고 미국이 지난달 16일 경제 제재 조치를 전격 해제하면서 한국 기업들도 이란과의 교역과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란 진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금융권에서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와 같은 방식으로 지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의 잠재력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본격적인 진출에 앞서 여러 변수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미국계 기업이 참여하지 않는 시장이고, 달러로 거래가 이뤄질 수도 없어 제한적인 활동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타국 기업에 한해서만 풀었다. 이는 미국계 금융기관도 이란과 연관 있는 거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예컨대 자동차 회사가 이란에 제품을 수출하더라도 달러화로는 거래 대금을 주거나 받을 수 없고, 원화나 다른 나라의 화폐로 거래해야만 하는 셈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달러를 이용할 수 없더라도 유로화 등 다른 화폐로 결제할 수 있으면 된다는 입장도 있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이란과는 원화로도 결제가 이뤄져왔다"며 "달러를 쓰지 않더라도 유로화 결제를 할 수 있게 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과 이란은 제재 기간 동안에도 원화결제계좌라는 일종의 물물교환 개념으로 거래를 해왔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과 계약 맺은 이란 기업이 이란에 있는 은행에 리알화로 대금을 납부한다.
그러면 이란 은행은 국내 은행에 해당 내용을 전하고, 국내 은행은 이란 정부 명의로 된 계좌에서 원화로 기업에게 대금을 전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 정부가 이번에 제재가 풀리면서 해외에 나가 있는 돈을 제약 없이 회수할 수 있게 된 상황이 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달러의 역할을 크게 보는 쪽에서는 유로나 파운드, 엔화로는 거래할 여지는 물론 있지만, 국제 무역 시장에서의 비중을 볼 때 달러로 거래할 수 없다는 점은 상당한 제약 요소라는 점을 지적했다.
더욱이 달러라는 큰 통화 측면의 변수가 사실상 통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금융 측면에서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도 했다.
정부도 다른 통화라도 우선, 달러를 거치지 않으면 거래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달러 이외의 통화를 쓰더라도 개념적으로는 달러를 거쳐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과거 미국의 제재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었던 유럽계 은행이 보수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본격적으로 이란에 진출하기 전에 결제 시스템을 어떤 통화로 할 수 있는지가 대비돼야 한다"며 "원화 이외의 다른 통화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이란과의 핵 합의 사항에 들어있는 '스냅백' 조항이다. 이는 이란의 대외 관계가 악화될 경우 북한과 비슷하게 제재가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인 경우 제재가 부활하더라도 기존 진행하던 사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보완 장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이란과의 합의의 경우 완충 없이 전면 손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중동 전문가인 신동찬 변호사는 "이란은 분명히 좋은 기회이고, 과거 수준까지만 회복하더라도 이란은 엄청난 시장"이라면서도 "관련 제재들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출에 앞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